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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 Dec 13. 2022

유가네 닭갈비의 닭 야채 철판 볶음밥

어릴 적 먹던 추억의 음식

국민학교 2학년, 어머니가 사다주신 책에서 '계륵'을 주제로 한 짧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뒤로 닭갈비는 맛은 있지만 먹기 귀찮은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우리 반의 겨울 방학 등교 일과 성당 주일학교의 겨울 신앙 캠프와 내 생일이 한 날에 겹쳤다. 나름 독실했던 나는 성당 단짝 친구네 반 등교일에 먼저 등교하고 신앙 캠프를 다녀왔다. 캠프에서 돌아온 뒤 댓거리 pc방으로 가서 세이클럽에 접속했는데, 반 친구들 몇 명이 왜 그날 오지 않았냐며 성화다. 친구 한 명이 너 오면 댓거리에 닭갈비 먹으러 갔을 거라고 했다. 닭갈비? 계륵? 그거 맛있어?


얼마 후 친구들을 따라 댓거리에 새로 생긴 "유가네 닭갈비" 집으로 갔다. 그제야 친구가 말했던 닭갈비는 계륵이 아니라 뼈를 발라낸 닭고기에 매콤한 양념을 하고 여러 채소와 함께 볶아 먹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닭갈비를 사 먹을 만큼 용돈이 풍족하진 않았지만 대신 유가네 닭갈비에서는 일 인분에 2,500원이면 배 든든한 닭 야채 철판 볶음밥을 먹을 수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 앉으면 커다란 철판에 깍둑 썬 마가린이 나왔다. 마가린이 녹을 때면 다진 파를 잔뜩 넣어 볶기 시작했고, 테이블당 양배추 샐러드 한 접시와 일인당 한 그릇씩 나박김치를 줬다. 철판 위의 파가 숨이 죽으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볶음밥의 시간이다.


닭갈비 양념에 버무린 다진 닭고기 조금과 다진 김치, 김가루, 유가네 닭갈비의 특제 양념을 한데 넣고 직원이 직접 밥을 볶아준다. 커다란 주걱 두 개로 요리조리 볶은 파와 밥과 재료들을 열심히 섞으며 볶았다. 그때는 열심히 밥을 볶으면서 튀는 밥알이 꽤 많았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터지던 중학생들은 밥알을 피하면 깔깔 웃었다. 닭갈비가 스쳐간 볶음밥을 열심히 먹고 나오면 옷에서는 한동안 닭갈비 특유의 매콤한 향이 났다.


유가네 닭갈비는 떡볶이 1인분 값으로 든든한 볶음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토요일 성당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특전 미사가 끝나면 친구들과 자주 갔었다. 나중에는 볶음밥에 모차렐라 치즈도 추가할 수 있었는데, 매콤한 밥과 고소한 치즈의 조화는 참 좋았다.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면서 2,500원짜리 볶음밥보다는 닭갈비를 먹고 후식으로 볶아먹는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친구들과 먹던 닭 야채 철판 볶음밥의 맛은 느낄 수 없다. 가끔씩 양념 맛으로 먹는 든든하고 자극적인 그 볶음밥 맛으로만 배를 채우고 싶은 날도 있다.


집에서 흉내를 내어 그때 그 볶음밥을 만들어 보려고 찾아보니 스마트 스토어에 유가네가 입점되어 있다! 닭 야채 철판 볶음밥 밀키트는 없지만 대신 유가네 비법 비빔장을 판다! 친구들에게 장난 삼아 이야기하는 비법을 알고 싶은 닭고기 양념 4대 천왕중 하나였는데 한 팩에 2000원이면 그 비법이 집으로 온다. 이 나 주문하려고 보니 막국수 양념장이다. 역시 추억의 맛은 추억 속에 남겨두어야 하는가 보다. 대신 이제 우리 아들에게 추억이 될 수 있는 엄마의 닭고기 볶음밥을 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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