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걱정들을 하게 되었는지에 앞서 어린 시절 나는 어떤 걱정들을 하며 살았는가를 되돌아보았다. "소심하다"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던 때는 2000년대 초반이지만 나는 그 단어를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몇 가지 기억에서 우리 엄마는 나에게 항상 "너는 어쩜 그렇게 소심하니."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몇 가지 추측되는 부분들이 있다. 나는 어떤 특정 사건이나 스토리를 내 세계로 끌어와 내 일처럼 걱정하는 편이었다. 어린이 고사성어 책에서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했다던 기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나는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작은 한 동짜리 아파트에 살던 나는 나름 동네에서 똑똑하다고 소문난 아이였다. 사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 한글을 읽을 수 있었는데 그것을 기특하게 여긴 어른들은 엄마 아빠가 선생님이어서 그런지 아이가 똑똑해서 그럴 것이라고 믿으신 것이다. 그때는 한 동네가 모여 한 아이를 키우던 시절이니 더했을 것이다. 그렇게 똑똑한 아이는 속까지 깊어 한 살 어린 남동생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항상 동생을 챙겨서 집에 데려간다며 기특하다 하셨다.
하지만 남동생을 찾아 동네를 헤매던 내 마음은 항상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나와는 달리 지금까지도 매우 대범한 내 동생은 누구든지 놀 사람만 있으면 어디든 함께 따라가서 놀았다. 한 번은 유치원생 꼬마가 동네 큰 형들을 따라 산에까지 다녀와서 온 가족이 기함한 적도 있다. 늦게 들어온 동생에게 엄마는 개구리소년 이야기를 들먹이시며 무섭게 야단치셨다. 그 이후로 나는 내 동생이 그렇게 될까 봐 내 눈에서 벗어나면 두려운 마음으로 동생을 찾아다녔다. 한 번은 아무리 동생을 찾아도 찾을 수 없어 헐떡이며 운 적도 있다. 그런 누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내 남동생은 길 잃은 적 한번 없이 매일 집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