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떤 역할로 묶이지 않는 하나의 개체라면, 우리는 그냥 어쩌다 같은 시대에 소환된 존재들일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아빠이길, 엄마이길 기대할 수 없어진다. 그건 어쩌다 붙은 이름이지, 끝까지 수행해야 할 의무는 아니니까.
역할은 편하다. 엄마이길 기대할 수 있고, 때로는 강요도 할 수 있다. 애정을 요구해도 되고, 밥을 해달라거나 사랑해 달라고 말해도 된다. 엄마니까. 그 한 단어 덕분에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허용된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움은 자주 폭력이 된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한 부분만 취하고 나머지는 모른 척하거나 억지로 끌어당기는 일. 원하지 않는 것까지 역할이라는 말로 밀어붙이는 일.
개체로 바라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대도, 욕망도, 집착도 갑자기 다 허무해진다.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할 이유도 줄어든다. 우리는 원래 서로 분리된 존재고, 그냥 우연히 만나 같은 시대를 지나가고 있을 뿐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과하게 달라붙던 마음도, 배신감처럼 느껴지던 감정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
대신 거리가 생긴다. 그 사람은 내 것이 아니고, 나는 그에게 어떤 것도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 의식하게 된다. 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하고, 그만큼 혼자 버텨야 한다. 결국 태어나는 것도 혼자고, 살아가는 것도 혼자고, 죽는 것도 혼자라는 걸 미리 알아버린 느낌. 그래서 조금 빨리 굳어지고, 조금 빨리 강해지는 쪽을 택하게 된다. 쓸쓸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고, 무엇보다 자유롭다.
아빠가 사주로 신나 있는 걸 보다가, 이상하게 내 과거가 겹쳐 보였다. 부모의 등 뒤를 따라가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같은 시대를 사는 인간 하나를 보는 느낌이었다. 언제든 철없어질 수 있고, 언제든 늙어갈 수 있는 존재. 그렇게 생성되고, 소환된 하나의 개체. 그 순간만큼은 아빠라기보다 그냥 인간처럼 느껴졌다. 그게 좀 묘하게 인간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