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에 걸릴 거면 이렇게
뭐냐 이 영화.
뭐냐 이 결말? 어떻게 된 거냐.
엔딩까지 7분이 남았는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때 이미 예감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문을 모르겠고, 그래서 묘하게 재미있다. 이해하려다 보면 놓치고, 그냥 느끼면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재밌었던 장면들과, 그걸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망상들을 적어두기로 했다.
할머니와 만나는 장면들은 거의 전부 인상 깊었다. 특히 고무줄처럼 튕겨 날아가는 장면. 감동적이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웃음이 먼저 나왔다. 사람이 점이 되어 날아간다는 설정도 그렇고, 영화 전체의 분위기 자체가 너무 익살스럽다. 이 익살스러움 때문에 ‘정신이 망가지는 일’조차 나쁘지 않은 꿈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꿈과 닮아 있다. 어느 순간 꿈이라는 걸 자각하는 꿈. “제발 떨어지지 않게 해 줘”라고 생각했을 때 정말로 떨어지지 않거나, 고통이 느려질 때. 그때 느껴지는 전능감. 현실의 감각과 환상의 감각 사이에 잠시 머무는 기괴하고 몽환적인 안정감. 이상한데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상태.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정신병은 ‘재밌는 꿈’처럼 보인다.
가끔은 인생을 취한 채로 사는 게 가장 행복한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취기가 과해지면, 우리가 말하는 ‘병’이 되는 걸까. 결국 무엇이든 쓰임의 문제 아닐까. 칼도, 약도, 정신병도.
다만 병이라고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신병은 도피성 약물과 닮았다. 아팠기에 필요해졌고, 아프지 않았다면 굳이 취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시작에는 늘 아픔이 있다. 그래서 긍정적이기 어렵다. 마이너스에 플러스를 더해도, 마이너스가 너무 크면 여전히 음수인 것처럼. 그래도 플러스를 차곡차곡 쌓다 보면 언젠가는 양수가 될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왜 아파졌을까. 트리거가 된 사건은 보이지만, 터지기 전까지 쌓인 시간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의 영향이 전부였을까. 아니면 어머니와의 관계도 한몫했을까. 어머니 역시 정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실체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영상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식사 장면에서 모두가 환호해 줄 때, 솔직히 좋았다. 나는 환호를 좋아한다. 엑시트에서 드론들이 어셈블 될 때 울컥했던 것처럼. 또 요즘 기준으로는 호불호 갈릴 성적 코드도, ‘옛 영화니까’ 하고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은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정말 정신병원을 졸업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묘하게 석고나 페인트 냄새 같은, 차갑고 깨끗한 벽의 감각이 느껴졌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와는 또 다른 결이다. 이 영화는 유난히 푸르다.
남자 주인공은 끝내 뭐가 정상인지 잘 모르겠다.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더 본능적인 선택을 하는 걸까. 이성은 곁치레일뿐인 건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의사들의 시선에서는 문득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먹지 않음으로 정체성을 지키려는 태도, 세계와 어긋나도 끝까지 버티는 방식. 소망이라는 건 원래 쉬우면 이상한 법이니까.
모든 창작물의 끝은 결국 섹스나 키스로 귀결되는 걸까. 결말을 수습하기 가장 쉬운 방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 공간에서라도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 나쁜 감정은 아니다. 정병에 걸릴 거라면, 차라리 익살스럽게 걸리고 싶다. 노르웨이의 숲처럼 죽음을 부추기는 숲 말고, 이 영화의 민트색 병원처럼.
할머니의 말, “전기 맞고 핵폭탄이 돼라”는 말이 진실이었는지는 끝내 모르겠다. 그게 가장 궁금하다. 존재의 의미는 뭔가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 영화는 같이 알아가자고 말해놓고는 끝까지 답을 주지 않는다. 정말 이상한 영화다. 분위기도, 스토리도. 그런데 영화란 원래 분위기를 보러 가는 거 아닌가. 공기, 습도, 온도 같은 감각을 직접 맞으러 가는 거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졸라 이상하다. 그런데 재밌다. 공짜로 봐서 가치가 두 배다. (고마워 넷플릭스!)
이 영화 명대사 중에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라는 대사가 있는데 조진건 조진채로 두고 앞만 보고 살라는 거 같아서 뭐랄까, 세상 요지경이지만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거 같다. 그리고 그 대사를 치는 여자에게서 왠지 모를 모성이 느껴졌다. 남주인공과 동화되어버린 걸까? 엄마를 잊지 못하는 그와?
마지막으로 알게 된 사실 하나.
이 영화, 박찬욱 감독 작품이었다.
어쩐지. 신비스러움을 다루는 감각이 남다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