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상점과 남해각, 그리고 카페 보이지
러닝을 하기 위해 아침 7시에 기상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알람 10개를 연달아 설정해놔도 일어나지 못했던 시간인데 남해에서는 어쩐지 눈이 바로 떠졌네요. 남해의 바다를 품은 아침 풍경을 눈에 꼭꼭 담고 싶은 마음에 그런가 봅니다.
러닝을 할 때에는 '런데이 Run Day' 앱을 사용해요. 런데이 앱은 더 나은 러닝 습관을 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앱입니다. 런데이 앱 내에는 가상의 트레이너가 있고요, 이 트레이너가 러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 다양한 설명을 곁들여줍니다. 초보의 경우에는 걷고 뛰는 것을 반복하며 러닝을 할 수 있는 지구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이 트레이너가 주기적으로 안내를 해주고요, 뜀박질하다가 지치고 힘이 들 때쯤에는 힘을 북돋아주는 멘트를 날려주기도 한답니다. 런데이 앱을 사용하면 혼자 뛴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좋아요. 누군가 내 옆에서 나를 응원해 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더 뛸 맛이 나더랍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동네에서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에요. 이 길은 오르막길이라 더 아래에서 보면 회색 길과 좌, 우측으로 단조로운 벽돌 집만 보이는데요. 이 오르막길을 살짝 오르면 저 멀리 펼쳐진 바다와, 우측에 커다란 나무가 어우러져서 멋들어진 풍경을 자아낸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속담을 풍경으로 치환한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어요. 오르막길을 오르기 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열심히 뜀박질하고 이 오르막길을 오르면 꼭꼭 숨어있던 멋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리고 이 사진 안에는 엄청난 깔 맞춤도 숨겨져있답니다. 사진 좌측에 파란색 천과, 우측 벽돌집 창문을 가려둔 파란색 천막과, 우측 앞쪽에 큰 파란색 물통. 이 세 개의 파란색들이 어우러져서 엄청난 맵시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보통 사진이지만 낱낱이 살펴보면 이렇게 강렬한 포인트들이 숨어있지요.
러닝은 마쳤지만요. 아직 밖에서 해야 할 일은 남아있답니다. 그것은 바로바로 옆집 아저씨의 반려견과 인사하기! 검은색 털을 가진 귀여운 아이예요. 아직 몸집이 작은 거 보니 어린아이인 것 같은데, 저만 보면 반겨주고 안기려고 해서 큰일이에요.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멍줍해가고 싶은 욕망이 가득 찬답니다.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아이라서 일하다가 마음이 답답하거나 머릿속에 환기를 주고 싶을 때 요 아이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다스리곤 해요. 아침 인사를 찐하게 마치고 이제 진짜 숙소로 복귀합니다.
제가 속한 팀은 금요일마다 파트 내 세미나를 한답니다. 거창한 건 아니고요, 그저 각자가 품고 있는 생각 혹은 인사이트들, 본인의 경험 등을 파트원들에게 공유하는 자리예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해변 앞 파라솔 아래, 선베드에 누워보기로 합니다.
세미나의 취지는 "여러 사람 앞에서 내 머릿속 생각을 말로 잘 풀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해요. 처음 이 세미나의 존재와 취지를 들었을 때 굉장히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어요. 서비스 기획자는 본인이 가진 생각과 의도를 글과 말로 잘 풀어내는 게 다른 직군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미나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연습을 해볼 수 있는 기회겠구나 싶었답니다.
이날은 한 파트원분께서 '러닝'을 주제로 이야기해 주셨어요. 마침 남해에 와서 러닝과 친해지고 있던 차여서 타이밍이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눠주신 동료분은 우연한 기회로 러닝을 접하게 되어, 어느샌가 전문적인 영역까지 접어드셨다고 합니다. 역시 모든 것은 우연히 일어나는 법! 이날의 세미나는 약 1시간 정도 이어졌어요. 확실히 바다를 보며 세미나를 들으니 더 집중이 잘 되는 느낌이었어요.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랬습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점심을 먹었는데요, 이날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서 숙소에만 있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여 주변에 작업하기 좋으면서 뷰 좋은 카페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는데요, 담당자님께서 이전 기수 사람들이 작업하기 좋은 카페로 "보이지 카페"를 추천해 주셨다는 힌트를 주셔서 당장 달려가 보았습니다. 역시 사람들의 빅데이터는 사이언스죠. 뷰 좋고 작업하기 좋은 조건을 모두 가진 멋진 기대 이상으로 곳이었습니다.
푸르른 하늘이 바다에 비쳐서 에메랄드 빛 바다를 자아냈고요, 우측에는 남해 아난티 컨트리클럽(골프장)이 보여서, 사람들의 라운딩 하는 모습이 한눈에 보여서 더 여유로운 전경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람도 솔솔 불었고, 평일이라 사람도 많지 않아서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왔어요.
같이 카페에 간 룸메 언니가 멋들어진 사진도 찍어주었어요. 오래간만에 저를 피사체로 한 멋진 사진을 건져서 행복했답니다. 저 자리에서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내리 일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었어요. 남해의 카페나 음식점은 보통 6~7시에는 운영을 마치기 때문에 일찍 집에 복귀할 수밖에 없는데요, 남해 보이지 카페는 남해 아난티 주변에 위치한 곳이라 그런지 무려 저녁 8시까지 하기 때문에 조금 더 머물 수 있었어요. 기가 막힌 풍경을 벗 삼아 일하다 보니, 평소보다 더 집중이 잘 돼서 늦은 시간까지 머물러 있었네요. 그 이후엔 숙소에 복귀하여 저녁을 먹고 잠을 청했습니다.
남해에서 맞이하는 첫 주말입니다. 이날은 대망의 패러글라이딩을 하기로 한 날이에요. 마침 바람도 세지 않고, 비도 오지 않아서 계획대로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었습니다. 패러글라이딩을 위해 센터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요, 인솔하시는 분의 차를 타고 높디높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구불구불, 울퉁불퉁, 포장되지 않은 산길을 오르는 내내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덜컹거림이 심했어요. "오프로드가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패러글라이딩이라..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사실 저는 패러글라이딩처럼 활공하는 스포츠 활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전혀 없었어요. 무서워서라기보다는, 스포츠 활동을 하다가 만에 하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마주해서 내 몸이 상할 것에 대해 두려움이 커서 그렇습니다.
어찌어찌 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이미 활공을 끝내고 착륙까지 끝냈는데요, 너무 순식간이라서 쾌감, 짜릿함 등의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답니다. "갑자기 바람이 불면 어쩌지.. 바다로 착륙하면 어쩌지.. 떨어져도 나무에 걸렸으면 좋겠다.." 와 같은 잡생각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죠..
공포의 패러글라이딩 시간을 끝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중국집으로 향했습니다. 담당자님께서 데려가 주신 곳이었고, 원래 중국집에 오면 쟁반짜장만 주문하는 편인데, 담당자님께서 볶음밥을 주문하셔서 저도 볶음밥을 주문했어요. 원래 이런 곳은 현지인이 하는 걸 따라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는데요, 정말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짝 간이 강하게 들어가긴 해지만 기가 막히게 맛있었습니다. 볶음밥을 주문해도 하나 다 먹지 못하는데요, 양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긁어먹었어요.
식사 후에는 담당자님의 인솔에 따라 남해각을 갔습니다. 남해각은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에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이고요, 1975년에 설립되었는데 당시엔 전국 각지의 여행객들이 남해각을 보러 오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신혼부부들이 남해각으로 신혼여행도 많이 왔다고 해요. 남자는 정장, 여자는 한복을 입고 남해각 아래에서 사진을 찍은 신혼부부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남해각 1층에는 귀여운 소품샵, 전시품장이 있어요. 위와 같은 귀여운 노트도 팔고요, 남해의 특산품들과 남해의 이미지가 그려진 컵과 자기, 그리고 에코백 등 여러 소품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앞에는 빈백이 늘어선 루프탑 형식의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서, 여행객들이 시간 보내기 딱 좋은 곳이었어요. 다시 남해에 오면 남해각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위층에는 전시장도 있어서 남해의 역사와 남해각의 히스토리 등을 사진과 글로 접할 수도 있어요. 여러모로 볼거리 많은 공간이었습니다.
남해각 관광까지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는데요. 금요일이라서 일찍 퇴근을 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B급상점에 들렀습니다. 러닝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공간인데, 알고 보니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소품 숍이었어요. 상점 앞 인테리어를 보니 왜 인기 있는 곳인지 알겠더라고요. 여러 소품들과 제품들로 주변이 꾸며져있었고, 약간의 컬러 믹스 매치도 이루어져서 트랜디한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부조화 속의 조화라고나 할까요!
내부가 크진 않았습니다. 둘러보는데 5분 정도면 되겠단 생각이 들었네요. 한 견에는 티셔츠를 만드는 곳도 있었는데요, 제가 갔을 때 한 분께서 티셔츠에 넣을 도안 디자인을 하고 계셨어요. 저는 디자인엔 젬병이라 당연하게 스킵 했지만, 자신 있는 분이라면 재미 삼아 한번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하루가 굉장히 바쁘게 흘러갔네요. 일 년 중에 얼마 없는 완연한 늦여름 날씨라 실내에 있는 게 너무나도 아쉬웠답니다. 게다가 밖엔 바다가 있는데 안 나가고 배길 수 있나요. 집 밖에 나가면 귀여운 고양이들과 바다가 있는 남해에서는 무조건 실외에서 활동하셔야 합니다.
모든 활동이 끝나고, 숙소 루프탑 해먹에 누워 밀린 환승 연애를 보며 저녁을 맞이했답니다. 남해에 오고 난 후부터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받고 있어요. 서울이었다면 집 안에 사무실 방 한편에 갇혀서 아침, 점심, 저녁 매 순간 단조롭게 지내고 있었을 텐데, 남해에 오니 모든 일상의 순간순간들이 여행처럼 느껴지네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남해의 것들도 익숙해지는 시간이 올 테지만요, 서울에서 느끼던 그 단조롭고 지루한 감정은 남해에서만큼은 경험하지 못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