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술 마실 때 종종 설파하는 나만의 개똥철학이 하나 있다. 이른바 ‘유고위고 정신’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매우 어려운 영어 문장이 두 개나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지금부터 매우 어려운 영어 문장 두 개를 소개할 터인데, 부디 독자분들이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어려운 문장이긴 하지만 영어가 좀 되시는 분들은 독해에 직접 도전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싶다. 단어들이 난해하니 사전을 참고해도 좋겠다.
『분노의 역류 : 원제 Backdraft』라는 영화가 있다. 1991년 작품으로 거센 불길에 맞서 싸우는 소방관 형제의 치열한 삶과 우애를 그린 영화다. 커트 러셀이 형의 역할을 맡았고, 당시만 해도 꽃미남 배우였던 윌리엄 볼드윈이 동생 소방관 역을 맡았다. 로버트 드니로와 제니퍼 제이슨 리, 도널드 서덜랜드 등 쟁쟁한 배우들도 이 영화에 등장한다.
매우 어려운 영어로 설명해야 하는 장면은 이렇다. 한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하던 중 바닥이 꺼지는 바람에 불길 속으로 추락할 위기에 빠졌다. 용맹하고 헌신적인 형 소방관 커트 러셀이 추락 직전의 동료 손목을 가까스로 잡았다.
손을 놓으면 동료는 죽는다. 매달린 자도, 붙잡은 자도 필사적이다.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매달린 자는 물론, 그를 구해주려는 동료 소방관의 목숨까지 위태로울 지경이다.
바로 이 장면에서 매우 어려운 영어 문장이 등장하는데, 독자 여러분들도 약간 긴장을 해 주시기 바란다. 그럼 지금부터 영어 문장을 소개하겠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매달린 소방관이 절망적으로 이렇게 외친다.
“렛 미 고….”(Let me go)
해석을 덧붙이자면, “이대로 매달려 있다가 힘이 빠지면 우리 모두 다 죽을 테니 손을 놓고 나만 죽게 내버려 둬”라는 의미를 가진 매우 함축적인 문장이 되겠다. 이때 그를 붙잡은 커트 러셀의 대답이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이번 대사는 아까보다 훨씬 복잡하니 더 긴장을 해주셔야 한다. 커트 러셀의 명대사는 이렇다.
“유 고, 위 고!” (You go, We go!)
너무 어려운 문장이어서 마음이 많이 송구스럽다. “유 고, 위 고!” (You go, We go!)는 “네가 가면, 우리도 간다”는 뜻으로 좀 확대해석하자면 “네가 죽으면 우리도 죽는다. 우리는 일심동체, 언제 어디서나 우정을 바탕으로 목숨을 함께 걸 수 있는 끈끈한 동료다”라는 뜻 정도가 되겠다. 이 얼마나 멋진 대사인가?
나는 이 영화를 본 이후부터 유고위고 정신을 삶의 모토로 삼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벗들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의 벗들이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이 유고위고 정신이 험악한 시대에 우리의 삶을 버티게 만들 것이라고. 비록 매우 어려운 영어 문장(응?)이지만 내가 이 문장을 삶의 개똥철학 중 하나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기심이 강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우정’이라는 단어의 가치를 종종 폄훼하곤 한다. 우정이 밥 먹여주냐고, 그런 거 지켜서 뭐에 쓸 거냐고 말이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2013년 ‘아메리칸 이코노믹 저널’에 실린 이탈리아 보코니 대학교 경제학과 토마소 나니치니 교수의 흥미로운 연구를 살펴보자. 이 연구는 매우 단순하다. 헌혈이 많이 이뤄지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 정치적 선거가 실시될 경우 어떤 차이가 나타나느냐를 살펴본 것이다.
헌혈은 사회적 우정의 징표 같은 것이다. 남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과 연대해 돕겠다는 마음이 충만한 지역에서 당연히 헌혈이 많이 이뤄진다. 그런데 나니치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놀랍게도 사회적 우정이 충만한 지역은 정치도 긍정적으로 바뀐다.
일단 우정이 충만한 지역의 국회의원들은 우정이 부족한 지역의 국회의원보다 훨씬 청렴하다. 부정부패에 휘말리는 횟수나 재판에 기소되는 횟수가 훨씬 적다. 한 가지 더. 이런 지역에서 당선된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우정에 보답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지역 국회의원들의 입법이 훨씬 공익적이라는 이야기다.
반면 사회적 우정이 적은, 즉 헌혈을 하지 않는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은 지역 예산이나 자기 잇속만 챙기는 경향이 더 강하다. 비리 관련 범죄에 연루될 확률도 더 높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추정은 할 수 있다. 우정을 지키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는 뜻이다. 후보자가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인지, 아니면 우리 등이나 처먹을 사람인지 식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정이 강한 지역일수록 정치가 나아지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내가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자녀들에게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다고. 첫째는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해!”이고 둘째는 “친구가 밥 먹여주냐?”이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해!”라고 야단을 치면 자녀들의 한계가 명확해진다. 공부 이외에는 다 쓸데없는 짓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해 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회사를 위한 번뜩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서 열심히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부장님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시킨 일이나 잘해!” 이래버린다? 이러면 그 회사 직원들은 죽어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가 없다. 그래놓고 사장님은 사내 메일을 통해 “우리는 보다 창의적인 조직이 돼야 합니다” 이 지랄을 한다. 그게 될 말이냐?
“친구가 밥 먹여주냐?”는 말은 더 큰 해약을 끼친다. 초중고 교육 과정은 단순히 국영수를 배우는 학원이 아니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겪는 사회화의 과정이다. 여기서 친구를 만나고 그들과 동화하며 서로 이해하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 시기 삶의 준거가 되는 부모가 대뜸 “친구가 밥 먹여주냐?” 이래버리면 아이들은 우정을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 우정이 삶의 가장 낮은 순위로 추락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쳐놓고 사회가 어떻고 협동이 어떻고 하는 자체가 웃긴 것이다.
그리고 말이야 바른말이지 친구가 밥 좀 안 먹여주면 어떤가? 어떻게 사람이 살면서 밥 먹여주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단 말인가? 우정은 때로 밥보다 훨씬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의 저자 찰스 아이젠스타인(Charles Eisenstein)은 “‘나는 네가 필요치 않다’는 느낌은 환상에서 비롯된 착각이며, 사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당장은 ‘저런 XX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모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사실 모두를 진정으로 필요로 한다. 우리는 우정을 갈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