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청풍장, 오래된 시간의 흔적

by 글열음

얼마 전 부산 남포동 비프광장 근처에서 대학 동기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주말인 탓인지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또 부산은 역시 관광 도시답게 이 날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약속장소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세월이 비켜간 듯 여전히 자신들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몇 시간을 친구들과 보낸 후 종종 만나자는 이야기를 남기며 헤어졌다.


주말 복잡한 남포동 거리를 걷다, 우연히 오래된 아파트의 발견은 정말 뜻밖이었다. 무려 80년을 훌쩍 넘긴 긴 시간을 품고 있는 아파트가 지금도 남아 있었다. 청풍장 아파트와 소화장 아파트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부산에서는 최초인 듯했다. 현재 이곳은 옛 중심가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지하철 1호선 자갈치역 9번 출구 쪽으로 나와 가까운 골목에서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건물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오랜 세월을 품은 물건을 보는 듯,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해졌다. 건물은 1941년과 조금 뒤 1944년에 지어진 아파트로 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아파트였다. 지어진 연대를 보니 아마도 우리나라서도 오래된 아파트 순위에 들 것 같았다. 그 시절 아파트라니, 지금과는 다른 사회 분위기 속, 도심 한가운데, 자갈치 앞바다가 훤히 보일 듯한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그 시절 이 주변은 나지막한 집들로 가득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1941년에 지어진 청풍장 아파트 건물 외벽은 낡고 위험해 보였고, 지자체에서 붙인 위험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고 내가 사진을 찍고 있을 때, 한 주민이 베란다에 나와서 "사진 찍지 마시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니 불편해요"라고 했다. 이미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많이 왔다 간 듯했다.


지금도 1층은 과일과 야채 등을 파는 상가가 있었고, 1층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문은 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듯 철문으로 잠겨져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지은 이 집은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상당히 단단하게 지은 것 같다. 호기심에 네이버 검색을 하던 중 이미 많은 정보들이 올라와 있었다.


아파트가 현재는 4층 건물이지만 사실 처음과 다르게 몇차례 증축된 건물이라고 한다. 또 다른 내용은 내부 벽이 매우 단단해서 못이 잘 박히지 않고, 밖에서 보기와 달리 상당히 내부가 넓다는 내용, 그리고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고 있었으며, 그 당시에는 특수층이 거쳐간 집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시대적으로, 이 주변은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며 상업적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 시기에, 그들 중 일부가 이 집에 거주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이후 시대적 변화에 따라 또 다른 이들이 거주하게 된 곳이었다.


몇 걸음을 옮기면 바로 1944년에 지은 소화장 아파트가 보였다. 이름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물론 청풍장 아파트도 특이한 이름이었다. 확실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젠가 읽은 역사 부분 자료에서, 당시는 일본 소화라는 연호를 사용해 건물의 연대 표기했다는 정보를 본 적이 있다. 이곳 건물명도 혹시 그런 일본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역시 오래된 아파트로 위험 안내가 붙어 있었지만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오랜 시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이 건물이 지난 세월을 잘 견뎌 아직도 서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아파트를 바라보며, 나는 그 낯선 풍경을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시기적으로 1941년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빠져들던 그 당시는 사람들의 삶이 점점 더 어려워지던 때였다. 여기저기서 일본어가 들리고 일본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을 것이다. 우리말은 거의 자취를 감춘듯 한 분위기는 생각만으로도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그 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나는 그때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상상해 보았다.


일제 강점기는 지나간 오래전 역사로 여기고 있었는데, 눈앞에 서 있는 아파트를 보니 그 역사가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은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특별한 존재임을 누구나 안다. 이곳도 한 때는 누군가의 휴식처였고, 어느 날 그곳을 떠난 이 자리에 또 누군가 다른 이가 그 자리를 채웠다. 오가는 삶, 머무르는 삶, 떠나는 삶, 우리들의 삶이 이어져온 그 자리에 오래된 건물은 시간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촘촘히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까. 묵직하게 높이 서 있는 건물들 사이에 비좁게 끼어 있는 듯한 아파트는 마치 가쁜 숨을 들이쉬는 듯 시간의 흐름에 힘겨워 보였다.


부산은 예전부터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오가는 항구도시였다. 특히 남포동과 자갈치 주변은 최고의 상업지였고, 또 중앙동은 지금으로 하면 업무중심지구였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도시가 더 확장되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을 느꼈다. 주말 친구들과 약속으로 우연찮게 본 이곳 두 아파트가 자리한 주변은 옛 것과 현대물이 공존하며 아파트 곳곳에는 그 시간을 함께한 이들의 흔적이 조용히 스며들어 있었다.


다시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부산의 지난 역사를 떠 오르게 하는 청풍장 아파트와 소화장 아파트는 특별하게 와닿는 날이었다.



청풍장아파트


소화장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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