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종종 자아가 굉장히 비대한 사람들이 있고, 나도 그 중 한명이다.
예술만이 가져다주는 도취감이 있다. 나는 창작을 했다,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이 얼마나 대단하고 창의적인가. 아마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거나 자아상이 비대해지는 건 자신은 남들과 다르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자부심 덕분일 것이다.
난 대단히 창조적이야, 이렇게 멋진 아이디어를 바로 떠올리다니, 난 정말 멋진 작가야.
정말 부끄럽지만, 모두 내 이야기다.
남들에게는 글을 못 쓴다며 부끄러운 척 하지만, 사실 그런 건 다 거짓말이다.
어릴 적부터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고, 그 다음부터는 늘 글 쓰는 걸 좋아했다. 글은 내 장기 같았고, 내가 한 반과 한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들 중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글만큼은 정말 특출나고, 탁월하며, 적어도 내 또래에서는 누구보다도 잘 쓸 것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그게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아닌가, 솔직히 중학교 3학년 때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주위에서 글을 쓰는 사람을 몇 명 보지도 못했다.
남들에게는 나도 글을 안 쓴다, 책을 안 읽는다며 거짓말로 겸손한 척 하지만 실은 '문학도 독서도 모르는 저 덜떨어진 것들' 이라며 은근 우월의식을 가지기도 했다.
말하면서도 얼굴이 빨개지지만 사실이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심지어는 내 마음대로 모든 아이들이 책이 아닌 인스타와 유튜버, 축구 선수와 게임, 화장 얘기로만 열을 올린다고 단정지었다.
어쩌면,
내가 글쓰기 대회에서 그리 우수한 성적을 거둔 적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그 생각을 진작 접었어야 했다.
기억하고는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글쓰기 최우수상을 받았었고, 5학년 때 굿네이버스 편지상을, 중학교 1학년 때도 편지로 상을 받았다. 중 2때는 반 아이들과 사이가 안 좋았는데도 글만은 몰표를 받았다.
이런 경험들이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에 나를 도취되게 했고, 곧 나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글을 쓸 수 있다는 자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런 연약한 경험으로 만들어진 비대한 자아는 곧 쉽게, 그리고 아주 크게 무너져버렸다.
중학교 3학년 때였나.
나는 나와 그다지 친하지는 않은, 그러나 같은 학교의 여자아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아이는 종종 그걸 공유했고, 심지어는 공모전에 자신의 작품을 자랑스럽게 투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일까.
그걸 보고 충격을 받았고, 조금 무너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왜? 왜 글을 쓰는 건 나만이 아니지? 나만 글을 쓰는 게 아니었어? 어째서?
사실 인간이라면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걸 아는데도, 나는 소설을 쓸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깊은 또래가 이렇게 내 근처에 바로 있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그게 신호탄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그 아이를 본 뒤로 색안경이 부서져 버린건지
내 주위에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 친구도 소설을 쓰던 경험이 있었다.
모두 한 번쯤은 공책에 자신이 만든 만화나 세계관 정도는 구상해봤던 것이다.
창작은 나만의 것이 아님을, 나는 머리로만 알았던 것이다.
심지어 틱톡과 인스타에는 수많은 청소년 작가 지망생들이 차례로 영상을 올렸다.
자신의 집필 과정을 공유했다.
소설의 내용도 공유했다.
아마 나와 동갑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영향을 많이 준 것 같았다.
그런 소식들을 너무 많이 접하자, 나는 허망해졌다.
글을 쓰는 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벌써 틱톡에서 많은 좋아요를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었고, 그 중 하나는 무려 베스트셀러까지 올랐다.
내가 만약 성인이 되어 회심의 역작을 내도 과연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을지 잠시 생각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쓰는 축에 들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더 속상했던 건
나는 아직도 내 글이 너무 잘 쓴 글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 내 글이 얼마나 부족하고 빈틈많은 글인지 아는데도,
내 글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내가 쓴 글이 한없이 재밌게만 느껴진다.
그렇지 않음을 아는데.
자신이 부족한 게 무엇인지 모르면 고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내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
글을 잘 쓰고, 심지어는 문창과 입시를 준비하는 나와 동갑의 청소년들을 보면
문득 나는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 같다.
그들에게 글은 소망이고 꿈이겠지만, 나는 글만이 전부다.
글을 쓴다는 장점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글은 유일한 내 자부심이었는데,
내 자부심이 사라져가는 듯 했다.
내가 지금껏 채티도 써보고, 공모전에 종종 참가하기도 했지만,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했던 걸 떠올려보았다.
나는 한 때 내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작아지는 것 같다.
그것도 내가 어째서 재능이 없고 무엇이 부족한지도 모르는채로.
가장 나쁜 건,
이런데도 나는 글을 놓아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