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존경하는 사람이 참 부럽다. 나도 한때는 우리 엄마, 우리 아빠가 최고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가정은 산산조각 나고 각자 살길 살면서 한때 하나였던 세 조각은 세상 그 어떤 조각보다 힘없고 못난 삶을 살고 있다. 따뜻한 울타리 아래에서 오순도순 따뜻한 집밥이 당연한 사람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한 걸까? 난 얼마나 죄가 많았길래 외로운 길을 혼자 걸어야 하는 걸까?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엄마였지만 명절날 유일하게 잘 방을 마련해 주던, 내 밥그릇을 챙겨주던, 내가 어딨는지 찾아주던, 여러 사촌들 사이에서 나를 추켜세우고 자랑해 주던 엄마였다. 엄마 아빠가 남남이 되고 아빠와 간 명절날 할머니댁은 다들 바글바글한데, 나만 너무 시렸다. 자꾸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어와 나를 할퀴고 가는 듯했다. 아빠는 할아버지 방에 박혀서 TV를 보고 있고, 다른 엄마들은 자기 자식을 챙겼다. 밤이 오고 이부자리를 펴서 가족끼리 삼삼오오 모여 잘 땐, 다른 가족 사이에 끼여서 잤다. 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땐, 내 밥만 없었다. 내 밥은 내가 알아서 퍼와야 했다. 아빠는 내가 이 많은 가족들 사이에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지 못했다.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카페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명절이 대목이기 때문에 직원이 빠져선 안된단 좋은 명분이 생겼다. 더 이상 많은 가족들 속 이방인이 되는 건 일 핑계로 안 할 수 있으니깐.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했다. 명절음식을 안 먹어 본 지 오래지만 어차피 맛없는 거 억지로 먹어야 했던 거 안 해도 돼서 너무 좋았다. 명절날은 배달을 시켜서 일 마치고 혼자 끼니를 때웠다. 혼자 배달음식을 먹는 명절이 오히려 더 외롭지 않고 좋았다.
할머니는 다 죽어가는 자기가 이젠 보고 싶지 않냐고 날 원망하셨다. 보고 싶은데 왜 오질 않냐고. 카페 그깟 거 돈 얼마나 번다고 명절날 다 빠지고 안 오냐고 날 나무라셨다. 할머니께 사실을 말했다. 부모님이 이혼하고는 혼자 가족들 사이에 껴서 있는 게 너무나도 외롭고 힘들었다고, 그래서 명절 말고 따로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러니까 왜 이혼을 해서 그러냐고 하셨다. 이혼은 내가 한 게 아닌데. 힘든 건 난데, 그래서 힘든 내가 빠져주겠다는 건데 다들 나를 나무란다. 엄마 따라가고 싶어서 그러냐는 둥, 너덜거려서 남아나지 않는 내 작은 품을 아주 작정하고 찢어 없애겠다는 듯 난도질한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나는 행복하고 싶은데, 왜 다들 날 가만히 두지 못해서 안달일까. 주변 얘길 들으면 이혼가정은 명절에 슬금슬금 자취를 감추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끌벅적한 가족들 사이에 남아있는 반쪽짜리 가정이 견디기 힘드니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아픔을 아무리 얘기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아빠에겐 이미 명절날 가기 힘든 내 속마음을 몇 번이고 말했는데, 전혀 내 입장을 대변해 줄 생각이 없다. 매년 명절이 되면 모든 기억이 리셋되는지 또 가자고 한다.
‘소속감’, ‘가족’ 내겐 없는 두 단어다. 나는 철저히 혼자다. 그 어디에도 소속되어있지 않고 날 대변해 줄 사람은 없다. 둘이라도 좋으니 내가 당신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혹처럼 붙이고 와서는 정글에다 툭 하고 떼버리고 선 알아서 잘 생존하라는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혹이다. 어쩌다 이 가정에 태어나서는 어디도 기대지 못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나는 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