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의 사람들은 왜 시작해야만 하나요

어느 것도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by 송윤지
강릉의 카페 <오월>, 눈과 당근케이크





3월의 정취를 느끼려 간 강릉에서 예상치 못한 폭설을 만났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엔 비로 시작했던 것이 작은 진눈깨비가 되었다. 진눈깨비는 무게 있는 눈덩이가 되어 모래사장을 수놓았다. 얼어버린 강릉 하늘에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현실감각을 잃은 네 명의 청춘이 도전한 설중산보는 촉각을 잃은 엄지발가락과 함께 마무리됐다. 올해의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떠난 곳에서 겨울의 끝자락과 지독하게 얽혀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올해의 3월 1일은 반드시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했다. 이도 저도 아닌 몇 달을 흘려보낸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게으름에 온 근육을 지배당하는 지금의 나는 언제나 깨트릴 수 있는 달걀 껍데기 같은 것임을, 마음만 먹으면 부지런하게 일어나 하루에 이만 보도 걸을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28을 향하다 1로 고꾸라질 달력 속의 숫자를 매일 되뇌었다. 숫자는 그렇게 시한폭탄 속 타이머가 되어 ‘그날’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1일을 맞이한 나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다. 도대체 나를 이만 보나 걷게 할 마음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뭉툭해진 일상의 껍질을 어떤 예리함으로 깨트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답을 찾기 위한 체력이 없다는 매일의 핑계를 댔다. 나를 일어날 수 있게 할지도 모르는 힘이 되려 나를 쓰러트렸다. 마음 한편이 무거운 채로 강릉에 왔다. 매 순간 유쾌한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품었다. 잠식될 것 같은 나의 일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건지.

영원히 궁금해하기만 하는 사람으로 남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찾아올 무렵,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3월 1일에 눈이 오다니. 그것도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엄청난 양으로 쏟아지다니. 눈은 오후 세시쯤 흩날리기 시작해서 우리가 강릉을 떠나는 저녁 9시까지 쉬지 않고 내렸다. 뉴스를 보니 50cm가 넘게 쌓였다고 했다. 근 7년 만에 큰 눈이 왔다는 택시기사님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할 것만 같은 봄에 뭐가 아쉬워 폭설이 내리는 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계절은 무엇을 놓지 못해 3월에 기록적인 폭설을 가져오는지. 문득 어떤 시작도 쉬이 문을 열지 못하는 내 모습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나를 둘러싼 환경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변화를 맞이하는 초입에서 나는 최고로 흔들린다. 나를 흔드는 것은 여러 가진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첫째다. 달라진 환경에서 퇴보할지도 모르는 나에 대한 불신이 둘째다. 이외에도 꺼내기 힘든 곳의 애정과 어색함 등 다양한 종류의 마음이 나를 흔들어댄다. 그래서 시작은 뒤로 밀리고, 나를 편안하게 하는 기존의 관성만이 목덜미를 자꾸만 붙잡는 것이다.

30을 향해 달려가는 타이머가 1로 폭발하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다. 봄 재킷을 입고 나온 시민들에게 걸어 다닐 수 없는 폭설을 선사하는 겨울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1일의 사람들은 매번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 같은데, 도망가는 나는 똑같은 한 달이 지나갈 때까지 숨을 참는다.

1일에 시작하게 된 컨셉진의 100일 글쓰기는 이런 이유로 나에게 큰 도전이다. 어떤 시작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내가 꾸준함을 약속한다는 것에 의미부여를 해도 좋다. 진짜로 눈이 오지 않을 봄을 지나 여름의 허리에 달려갈 때까지, 나에게 가능한 모든 시작과 끝을 기록하는 레이스에서 나는 어떤 호흡을 가지게 될까. 100일 동안 한 번의 숨 참음 없이 흐르는 계절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는 연습이 되기를 바라며 첫 번째 글을 마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NOISE CANCEL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