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의 나홀로 미국행
공항 출구로 나가자마자 당황을 면치 못했다.
분명 한국에서부터 어떻게 가야 할지, 블로그 리뷰를 살펴보고 택시 어플도 설치해왔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많은 외국인이 한데 섞여 있고, 한국어는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생각해보면 정신이 없어서 안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난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우버!
생전 처음 해외 공항을 혼자 가보는 거라, 안 그래도 길치인 내가 공항에서 국제 미아가 될까 걱정돼 한국에서부터 어떻게 할지 온갖 시뮬레이션을 그려보았다. 당시 블로그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버스 등 여러 교통수단이 있었는데 난 그냥 택시를 선택했다.
뉴욕을 상징하는 노란 택시는 예약하지 않고도 쉽게 탈 수 있었지만, 외국인 손님이라 기사가 길을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비용이 더 나올까 걱정이 됐다. 결국 비교적 믿고 탈 수 있는 우버 앱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수많은 사람이 공항을 바쁘게 걸어 다녔고, 한복판에 캐리어와 함께 서 있던 난 당황도 잠시 바로 유심칩을 바꿔 끼고 우버를 켰다.
생각보다 금방 매치됐기 때문에 뭐랄까. 의기양양해졌다. 나 좀 막힘 없는데? 누가 혼자 여행 어렵다고 했더라. 마음속으로 뿌듯함을 가득 느낄 때쯤 기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어디에 있냐며 물어보길래 열심히 몇 번 게이트 앞에 서 있다고 말했는데 내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며 화를 내셨다. 기사님도 나도 본토 미국 발음이 아니라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통화 품질도 좋지 않은 데다 주변도 시끄러워 잘 안 들린다고 말했더니 갑자기 전화를 끊으셨다.
당황스러워 그 자리에서 핸드폰만 보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여전히 통화 품질은 좋지 않았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어 인상이 찌푸려지는 와중에 내 앞에 어떤 남자가 보였다.
그분은 목에 팻말을 걸고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계셨다. 전화를 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언뜻 봤을 때 종교와 관련된 내용 같았다(오래 전 일이라 팻말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
전화에 집중하기 위해서 자리를 피하려고 했는데 그분이랑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날 똑바로 보시고 말하던 걸 더 크게 말씀하셨는데, 이미 내 한쪽 귀는 기사님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남은 한 귀로 그분 얘기에 집중하긴 어려웠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웠던 찰나, 양쪽에서 말을 하니 순간 판단력이 흐려져 대뜸 그 남성분에게 내 핸드폰을 건넸다.
겁도 없이 난 처음 보는 사람한테, 공항 앞에서 팻말을 들고 서 있는 분한테 난 핸드폰을 건네며 한 가지 부탁을 드렸다. 기사님 말 좀 해석해달라고. 내가 당최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제발 한 번만 도와달라고. 숙소에 가야 하는데 30분째 이러고 있다며 감정에 호소했다.
아직도 내가 핸드폰을 건넬 때 굉장히 당황해하던 그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이 구역의 미친X인가'라는 눈빛으로 날 보면서 하시던 연설을 멈추셨다. 난 굴하지 않고 제발 한 번만 해석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날 의심 가득한 눈으로 보더니, 알겠다고 줘보라며 핸드폰을 건네받고 눈을 내게서 떼지 않은 상태로 기사님과 통화를 해 주셨다.
그분은 통화를 굉장히 빠르게 끝내고는 기사님이 어디 계시고,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에 대해 말해 주었다. 고맙다고 말하려던 내게 그는 한마디를 더 붙였다. 너 이러면 안 된다고. 어리둥절했던 난 이유를 물었고, 그분은 아무한테나 핸드폰을 건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돌이켜보면 그분 입장에선 내 핸드폰을 들고 뛰어가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내 부탁을 들어주시면서 자신한테 했던 것처럼 아무에게나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 주셨던 모습에 여러 감정이 들었다.
잠깐 봐서 어떤 내용으로 공항 앞에 서 계셨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한국인이 그랬다면 시위 목적이었을 거다. 보통 시위하시는 분이라면 그 자체로도 삶이 이미 버거워 밖으로 팻말을 가지고 나왔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JFK 공항 앞에서 마주친 그분은 자기가 마주한 그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당장 눈앞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여학생을 도와줬다.
팻말이 목에 달랑거리며 그 무게를 계속 알렸지만, 가뿐히 그걸 옆에 내려놓으시더니 연설하실 때와 다르게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혼자 미국에 온 거라면 절대, 다시는, 이렇게 아무에게나 네 물건을 주면 안 돼. 걱정스러운 눈빛은 덤. 그러면서 내 여행을 응원해주시기까지 했다.
덕분에 택시는 잘 탈 수 있었다. 기사님이 살짝 원망스러웠지만 창밖으로 뉴욕을 상징하는 큰 빌딩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 마음은 싹 가셨다. 속으로 팻말님에게 감사를 전하며 눈앞의 믿기지 않는 풍경에도 외쳤다.
뉴욕아 반갑다!
해당 글은 2017년 8월에 다녀온 뉴욕 여행기입니다.
혼자 가본 첫 번째 해외여행이라는 점 고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