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 거대한 바벨탑을 쌓아 신에게 도전하려 하자, 신은 하나였던 언어를 각각 다르게 하여 인간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살게 된 인간은 신에게 도전하지 못했다.
언어는 참으로 중요하다. 언어는 인간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다. 인지는 아무 문제 없어도 언어가 어둔하면 왠지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게 된다.
아는 지인의 언니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신경에 문제가 생겼다. 이런 문제는 몸과 언어를 어둔하게 만들었다. 부모님은 이런 딸이 안쓰러워 ‘혹 결혼을 하여 부부관계를 가지면 나아질까’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적 수준은 조금 낮으나 형편이 부유하고 외모가 출중한 신랑과의 결혼을 주선했다. 지인은 본인이 결혼한 우리 웨딩숍이 좋겠다며 찾아왔다. 조금의 힘든 점은 있었지만, 결혼식은 무사히 치러졌다. 그리고 얼마 뒤 우연히 신부는 신랑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신부는 언어가 어둔하지 인지가 어둔한 것은 아니었기에 신랑과 소통이 쉽지가 않았다.
여기 경상도 친구와 서울 친구가 서로 답답해하면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경상도 친구가 서울 친구한테
“이게 뭐꼬? ”하니 서울 친구가
“뭐꼬가 뭐니? ”하며 다시 묻는다.
그러자 또다시 경상도 친구가
“뭐니는 또 뭐꼬? ”한다.
이 정도의 작은 차이에도 소통이 어렵다. 신은 참으로 대단한 선견지명을 지녔다.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남편은 금고를 장만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도둑이 들어 현금과 금붙이를 모두 잃어 본 경험이 있는 남편은 다시는 도둑을 맞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남편의 해법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금고는 우리 집에서 제일 찾기 힘든 곳에 자리 잡았다. 그런 금고 속에 들어있는 것이 ‘라면’이다. 라면을 좋아하는 남편이 아이들이 자주 먹지 못하도록 숨겨놓은 것이다.
신 역시도 인간에게 이중잠금장치를 해 놓았다. 신은 인간들의 소통을 막고자 서로 다른 언어와 함께 강력한 장치 하나를 더 보탰다. 신의 이중장치는 막강했다. 인간들은 전보다 더 갈등하며 싸웠다. 그 막강한 장치가 바로 성격이다. 신은 인간에게 성격이라는 자기만의 지도를 주어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였던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가 독특한 자기만의 성격이라는 지도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각자가 가진 삶의 지도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리고 본인의 지도도 잘 알지 못한 채.
하지만 인간들은 자기 지도를 다 안다고 큰소리치며 다른 사람의 지도를 살피려 든다. 이 때문에 인간은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다. 신들은 위에서 이러한 인간들을 바라보며 자기들의 계략을 감탄하며 자축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름을 이해하지 못해 인간관계에서 크고 작은 갈등상황을 겪는다. 다름을 이해하지 못해 갈등하는 대표적인 예로 ‘호식이와 우순이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호식이와 우순이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호식이는 우순이의 무던하고 단아한 성격에 반했고 우순이는 호식이의 호탕하고 과감한 성격에 반했다. 하루는 우순이가 호식이에게 저녁을 대접하겠다며 집으로 초대했다. 우순이는 너무나도 좋아하는 보드라운 풀을 예쁜 그릇에 정성껏 담아 본인의 마음을 표현했다. 호식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평소 우순이의 단아한 성격과 어울리는 저녁 식사를 기대하며 식탁에 앉았다. 하지만 기대는 깨졌다. 호식이가 전혀 먹고 싶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 풀이 깨끗하게 차려져 있는 것이었다.
호식이는
‘아니! 이 여자 성격 이상하네. 나를 어찌 보고 이리 하찮은 음식을 대접하지? ’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순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컸기에 본인의 마음을 전해서 우순이와의 사랑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호식이는 우순이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최대한 마음을 담아 평소 제일 좋아하는 사슴의 보드라운 가슴살을 잘 다듬어서 정성껏 식탁을 차렸다. 우순이는 잔뜩 기대하고 들뜬 마음으로 호식이네 집에 왔다. 하지만 식탁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 남자 성격 이상하네. 내가 그렇게 정성껏 대접했을 땐 잘 먹지도 않더니. 뭐! 나보고 이런 걸 먹으라고? ’
이렇게 둘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컸지만,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해 헤어지게 되었다.
우순이와 호식이 처럼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예가 ‘성격’이다. 인간은 어려운 수수께끼에 봉착하면 늘 성격 탓을 한다.
“저 사람 성격이 왜 저렇지? ”
“어떻게 저런 성격을 이해할 수 있겠어.”
“참으로 이상한 성격을 가졌네!”
“나랑은 성격이 안 맞아”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연쇄살인범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주인공 살인범은 뇌를 크게 다쳐 몇 번의 뇌수술을 받게 된다. 그 후부터는 그렇게 자다가도, 밥 먹다가도 불쑥 튀어나오던 살인의 충동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얘기는 소설 속의 얘기인 것만도 아니다.
한겨울 새벽, 모자와 목도리로 무장한 채 자전거로 출근하던 내 친구 미옥은 너무 감싼 탓에 버스를 보지 못해 부딪히고 말았다. 사고로 미옥은 뇌를 크게 다쳤다. 병원에서는 미옥의 머리뼈를 잘라 냉동 보관했다. 그리고 3년 뒤 뇌가 다시 안정되었을 때 머리뼈를 옮겨 넣었다. 그렇게 죽음 문턱을 다녀온 미옥은 건강하게 다시 우리와 계를 하고 있다. 나는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미옥을 보면서 확인했다.
그런데 지금의 미옥은 사고 전의 미옥과는 영 다른 성격이다. 우리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얌전하던 미옥은 지금은 가장 발랄하다. 사고 전엔, 함께 걸어가면서 미옥의 얘기를 들으려면 입 모양을 보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목소리가 너무 작아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렇던 미옥이 지금은 제일 목소리도 크고 액션도 크다. 내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렵다.
그렇다. 성격은 몇 번을 죽다 살아나지 않고서는 혹은, 타고난 뇌를 바꾸지 않고서는 바뀌지 않는다. 신의 선견지명은 잘 들어맞았다. 신이 만든 이중장금장치는 아주 막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