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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색하늘 Apr 17. 2023

묘한 행복과 굉장한 배덕감

  하루는 느려도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가, 벌써 일요일. 처음 알람에 눈이 뜨였을 때는 분명 오전 9시 언저리였을 텐데, 나도 모르게 다시 잠들어 버려, 두 번째 눈이 뜨였을 때 시계바늘은 오후 4시를 지나고 있었다.
  밖은 한바탕 비가 내렸는지 아스팔트가 촉촉하게 젖어있었고, 하늘은 흐린 채로 곧 저녁이 될 듯 어두워지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담요를 걷어내고는 한숨을 푹 쉬며 후회를 했던 날.
    
  이른 봄의 어느 주말은 이렇게 잠으로 시작해 잠으로 끝나버렸다. 배덕감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안타까운 시간에, 벌써부터 이렇게 되는 건 큰일인데──, 라며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켰다. 딱히 무슨 일정이 있었던 건 아니다. 원래라면 출근 예정이었지만 전날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텅 빈 시간이 되어버려, 사실 조금 더 잠들어 있었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저 조금 일찍 눈이 뜨였다면 근처 미술관이나 다녀올까, 하는 막연한 계획만 있었을 뿐. 뭐──, 이미 늦어버려 포기하고는 대충 코트를 걸치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니 마침 케냐AA로 방금 내려놓은 커피가 있다고 하기에. 원두를 변경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찾게 되는, 시큼하지만 제대로 커피의 고소한 향이 나는 블랙. 체내로 깊숙이 스며드는 카페인에 조금씩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가한 주말에 한두 번 늦잠을 자는 건 그다지 나쁘다거나 비난받을만한 게으름도 아닐 것이다.(아마도?) 그러고 보면 종종 피곤한 금요일을 보낸 후에는 작정하고 반나절 정도는 꿈나라에 있던 적도 있었다. 정당한 휴식은 다음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일 것일진대, 언제부턴가 해가 떠있는 시간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새싹처럼 생겨나,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크게 자라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러니까 이십대 중반이었을 동안은 잘 유지되는 것 같았지만, 최근부터 그 암묵적인 내면의 룰이 조금씩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굉장한 배덕감이 묘하게 알 수 없는 행복과 함께 뒤엉킨 채로 자리 잡고 있었다.
    
  새삼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배덕감에 대해서──. 생각과는 다르게 청개구리 기질이 강한 모양이라, ‘이건 아니지 않나?’ 라고 생각했던 일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한 번쯤 해보는 일은 꽤 오래전부터였다. 예를 들면, 아주 어릴 적에도, 학원 간다고 해놓고는 친구들과 해질녘까지 공을 차고 놀았다던가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물론 기본적으로 친구들과 놀았던 것이 재미있었던 것이겠지만, 그보다도 ‘속인채로’ 놀고 있다는 그 배덕감이 재미를 증폭시켰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운동장 구석 담을 넘어 게임방으로 도망가 버린다던가, 냉장고에서 술 한 병을 몰래 가져와, 수능 100일 남았을 무렵에 백일주라며 조금씩 돌려 마셨다던가 하는 일들도 있었다. 부모님이 주무실 새벽에 혹시라도 빛이나 소리가 새어 나갈까봐 거실 컴퓨터와 통째로 한 이불 속에서, 더워 죽을 것 같아도 열심히 게임에 몰두했던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일들을 돌이켜보면, 잘못된 걸 알면서 하는 행동에 대한 배덕감은 그 죄책감의 무게만큼 동일한 짜릿함을 가져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던 것이, 대학생이 되어서는 조금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전까지는 ‘외부의 규칙’을 어기는 것에서 그랬다면, 이제 ‘내면의 규칙’, 즉, 스스로 정해놓은 룰을 깨면서 종종 희열을 느끼곤 했다.
  요컨대 술을 잔뜩 퍼마시고는 다음날 1교시 수업을 가지 않는다던가, 금요일 오후 수업을 전부 땡땡이 치고 데이트하러 멀리 가버린다던가, 한 번은 수업이 아니라 시험을 땡땡이 친 적도 있었다.(나중에 계절학기로 채우느라 고생 좀 했지만)

  그리고 아마 이때부터 이런 일들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릴 땐 그저 꾸중을 듣고, 회초리로 몇 대쯤 맞고, 복도에서 벌 좀 서면 끝날 일이었지만, 스물 이후부터는 누구의 질타나 꾸짖음도 없이 ‘그로 인한 결과’를 온전히 혼자 받아내야 한다는 걸 실감해야 했다. 그리고 뒤에 감당했었던 그 무게는 상상 이상으로, 눈덩이가 그 시간만큼 먼 거리를 굴러와 거대해져 있었던 것이다. 망가진 학점이라던가, 졸업요건이라던가, 엉망진창인 스펙이라던가, 나이에 걸 맞는 식견이라던가 지혜라던가 하는 부분은 인생에 아주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게, 전역하고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어찌어찌 복구할 수 있을 정도로 망가져 있던 덕분에, 겨우 보수공사를 끝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 정말이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직장인이 되고는──, 그래서 그런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그럴 필요 없는 배덕감 마저 느끼게 되어버렸다. 지난번에는 월요일에 연차를 사용하고는 맑은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거실 바닥에 누운 채로 잠들어 일어나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던 월요일을 ‘나만’ 이렇게 평온하게 거실 바닥에 누워 하릴없이 햇볕을 쐬며 보낸다는 배덕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행복으로 둔갑해 있었다. 또는 퇴근하고 회사 근처 독서실에서 모두 공부하고 있는데 혼자 만화책을 본다던가 하는 것도. 다 같이 부대찌개를 먹으러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햄 사리를 추가하는 것도. 며칠 전에 친구와 통화하면서 배덕감이 장난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깔깔대던 일들이다.

  글쎄, 정말 어떨까──.
지금에서야 이야기지만, 이 배덕감이라는 것, 잘만 이용했다면 꽤나 괜찮은 자극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관점에서,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건──, 생각보다 별 게 아니라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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