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생산의 파도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의미들에 대하여
우리가 알던 창작의 위치가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자리를 옮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창작의 가치가 낮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창작이 담당하던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이지요. 예전에는 기술을 익히고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뽑아내는 능력'이 창작의 핵심이었다면, 이제 생산이 기본값이 된 환경에서는 그런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백지에서 시작해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더 이상 희소하지 않으니까요.
이제 창작은 '무엇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통과되었는가'의 문제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통과시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이미 충분히 많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어떤 결과물을 남기고 어떤 흐름을 여기서 단절해낼지를 결정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인공지능에게 열 가지 시안을 받았을 때, 그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 아홉 개를 버리는 것. 바로 그 선택의 순간이 창작이 되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사실은, 이 결정의 대부분은 정작 결과물로서 세상에 남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버려진 아홉 개는 아무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진짜 창작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취보다 '보이지 않는 선택' 속에 더 깊이 깃들어 있습니다. 만들어진 것보다 끝내 만들어지지 않은 것들,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기로 한 결정들이 창작의 본질을 구성하게 된 것이지요. 이것은 창작을 더 고급스럽게 만들지는 않지만, 창작의 위치를 완전히 바꿔버립니다. 예전의 창작자가 '만드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창작자는 '걸러내는 사람', '멈추게 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편집자, 큐레이터, 게이트키퍼의 역할이 창작의 핵심이 된 셈이지요.
과잉이 모든 의미를 덮어버리지 않도록 적절히 간격을 남기고, 연결이 너무 과도해지지 않도록 흐름을 제어하는 역할. 비록 눈에 띄지 않고 성과로 측정되기도 어렵지만, 바로 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중단이야말로 의미가 완전히 소멸하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방식이 된답니다. 우리가 보는 완성된 작품 뒤에는, 선택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들이 조용히 묻혀 있습니다. 그 묻힘을 결정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창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