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생산과 판단 - 5장

무한한 생산의 파도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의미들에 대하여

by 박지원

5장. 의미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는 참 오랫동안 "의미는 결과물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잘 만들어진 하나의 작품은 그 자체로 자신을 설명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보물 같은 의미를 찾아내려 애썼지요. 명화 앞에 서서 화가의 의도를 읽어내고,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숨겨둔 메시지를 해석하고, 음악을 들으며 작곡가의 감정을 느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결과물이 희소하던 환경에서나 가능했던 이야기입니다. 투입된 비용과 시간이 결과물의 무게를 지탱해주었으니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수년에 걸쳐 그린 그림은 그 시간만큼의 무게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매 순간 형식적으로 완벽한 결과물들을 쏟아내는 지금, 이 전제는 힘을 잃었습니다.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품질 좋은 것들이 동시에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지요. 모든 것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정교할 때, 아름다움과 정교함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습니다. 이제 하나의 결과물만 떼어놓고 보면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기억되지도 않고, 다시 불러와지지도 않으며, 서로를 너무나 빠르게 대체해버리기 때문이지요. 어제 감탄했던 AI 그림을 오늘 기억하시나요? 아마 기억나지 않을 겁니다.


완성도가 더 이상 의미의 조건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의미는 개별 작품 안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작품 하나하나를 아무리 깊이 들여다봐도, 거기서 특별한 의미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대신 여러 결과물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그들 사이의 '관계'와 '배치' 속에서만 의미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좋은가"가 아니라 "왜 이것이 지금 이 자리에 놓였는가"라는 질문이 판단의 중심이 된 이유이지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왜 하필 이것이 선택되었는가, 왜 이것이 여기에 배치되었는가가 의미를 결정합니다.


의미는 이제 콘텐츠 내부의 속성이 아니라, 배열과 간격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효과가 되었습니다. 발견해야 할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간신히 드러나는 결과인 셈이지요. 마치 별들 사이의 간격이 별자리를 만들어내듯, 콘텐츠들 사이의 관계가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작품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드는 힘이 아니라, 과잉이 잠시 멈춘 그 틈새를 포착하는 감각입니다. 무엇이 빠졌는지, 무엇이 멈췄는지, 그 공백을 읽어내는 눈이 필요해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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