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생산과 판단 - 7장

무한한 생산의 파도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의미들에 대하여

by 박지원

7장. 알고리즘은 무엇을 하는가: 완충 장치로서의 추천


과잉 환경에서 배치가 필수 조건이 되었다면, 실제로 그 일을 맡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요? 많은 경우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알고리즘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오늘 밤 볼 영화를 추천하고, 스포티파이가 들을 음악을 골라주며, 유튜브가 다음에 볼 영상을 제안합니다. 흔히 우리는 알고리즘을 우리의 취향을 조종하거나 버블 안에 가두는 지능적인 장치로 생각하지만, 사실 알고리즘의 역할은 훨씬 더 단순하고 제한적이랍니다.


알고리즘은 결코 의미를 판단하지 않아요. "이 영화가 당신의 인생을 바꿀 것입니다"라거나 "이 음악이 당신에게 깊은 감동을 줄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쏟아지는 과잉 생산물들이 우리 시야를 한꺼번에 가리지 않도록, 인위적으로 통로를 좁혀주는 '완충 장치'의 역할을 할 뿐이지요.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들이 너무나 빠르게 도착하기 때문에, 알고리즘이 시야를 조절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선택하기도 전에 피로해져서 모든 소비를 중단해버릴 테니까요. 수백만 개의 콘텐츠 중에서 고르라고 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 채 포기해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알고리즘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대신 시야를 인위적으로 좁혀서 우리가 소비를 계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10개"라는 식으로 선택지를 줄여주는 것이지요. 즉, 의미 있는 것을 골라내는 큐레이터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밀려오지 않게 흐름을 조절하는 밸브에 가까운 것이지요. 수도꼭지를 적당히 잠가서 물이 넘치지 않게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과거의 경쟁 과잉 환경에서 알고리즘이 '누가 더 인기가 많은가'를 가리는 심판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시스템을 굴러가게 만드는 조절기에 가깝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것입니다. 알고리즘은 결코 '멈춤'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지요.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다음 것'을 제안하며 흐름을 유지할 뿐, 무엇이 더 이상 필요 없는지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만 보세요"라고 말하는 알고리즘은 없습니다. 영상이 끝나면 바로 다음 영상을 자동 재생하고, 노래가 끝나면 바로 다음 노래를 틀어주지요. 추천은 연쇄를 이어갈 수는 있어도 그 중단 이유를 만들지는 못해요. 이것이 바로 알고리즘과 인간의 판단이 갈리는 결정적인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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