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생산과 판단 - 8장

무한한 생산의 파도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의미들에 대하여

by 박지원

8장. 판단은 왜 알고리즘으로 대체되지 않는가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데이터로 분석하고 다음 볼 것을 정확히 맞춘다면, 이제 인간의 판단은 설 자리를 잃은 걸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겉보기에는 알고리즘의 추천과 인간의 판단이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그 둘은 질문의 방향 자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디로 갈까?"와 "왜 여기서 멈출까?"가 완전히 다른 질문인 것처럼요.


알고리즘은 언제나 "다음에 무엇을 보여줄까?"를 묻습니다. 이 영화를 봤으니 저 영화를, 이 노래를 들었으니 저 노래를, 이 글을 읽었으니 저 글을. 끊임없이 다음을 제안하는 것이 알고리즘의 존재 이유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판단은 "이제 무엇을 더 볼 필요가 없는가?"라는 질문에서 비로소 발생합니다. 추천 시스템은 흐름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기에 중단을 선택할 수 없지만, 판단은 바로 그 연쇄가 멈추고 싶어지는 순간에 조용히 나타납니다. "충분해"라는 느낌, 그것이 판단의 출발점입니다.


판단은 결코 화려한 결단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아요. 연설하듯 "나는 이제 이것을 그만둘 것을 선언한다!"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조용히 페이지를 넘기지 않거나, 저장하지 않거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길 뿐이지요. 그냥 흥미가 사라져서 화면을 끄거나, 더 이상 검색하지 않거나, 저장해둔 링크를 클릭하지 않는 것. 성과로 측정되지도 않고 지표로 환산되지도 않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과잉된 세상에서는 바로 이 '행동의 중단'이야말로 의미 판단이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가 된답니다.


알고리즘은 다음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중단의 이유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중단은 이익이 되지 않으니까요. 플랫폼 입장에서 사용자가 계속 소비하는 것이 좋지, 멈추는 것은 손해입니다. 그래서 알고리즘은 절대로 멈춤을 권하지 않습니다. 판단은 오직 추천의 바깥에서, 추천이 더 이상 우리를 설득하지 못하는 그 틈새에서만 피어납니다. 판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나 그 위치에 머무는 것은 아니에요. 왜 판단이 갈수록 희소해지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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