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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Aug 31. 2023

용인에서 부산까지 4박 5일 보따리상

9월에 있을 부산일러스트페어를 준비하고 있다. 독립출판사를 오픈하고 세 번째 활동이다. 일러스트페어에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러스트페어와 함께 비스트원페이지스라는 명칭으로 스토리기획전이 개최되기 때문이다. 스토리기획전에는 독립출판사와 독립출판 작가가 참여할 수 있다. 스토리기획전은 올해 처음으로 마련된 자리이다. 다양한 문화산업과 콜라보를 이어 나가고자 부산일러스트페어에서 스토리기획전을 준비했다고 한다.


출판물을 선보일 수 있는 북페어와 독서 전은 이미 알려진 곳이 아니라면 정보를 쉽게 알 수 없다. 대개 연이 닿아 있는 출판사 관계자나 작가를 통해 정보를 알게 된다. 이쪽 분야에 아는 사람이 없다면 수시로 온라인을 검색하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다양한 문화행사가 3년간 개최되지 못했다. 마스크와 거리 두기가 해제되어서인지 유독 올해 처음으로 북페어를 개최한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울과 경기권은 다른 지역에 비해 북페어와 독서 전이 활성화되어 있다.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독립출판 창작자와 독립 서점이 서울과 경기권에 몰려 있는 것도 경쟁률에 영향이 있다.




북페어에 참여하려면 보따리상이 되어야 한다. 테이블 하나를 꾸미기 위해서는 책과 굿즈를 챙겨야 하니까. 책과 굿즈를 진열할 소품도 필요하다. 거치대, 출판사(혹은 작가) 및 책 소개, 결재 안내표 등도 갖춰야 한다. 짐을 꾸리다 보면 중간 크기의 여행용 캐리어 하나로 가득하다. 규모가 크거나 3박이 넘어가는 행사에는 책을 더 많이 챙겨야 한다. 행사의 규모가 크거나 일정이 길면 가장 큰 여행용 캐리어 하나가 필요하다. 이것을 들고 이동해야 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다수의 창작자는 본인의 거주지 근처에서 열리는 북페어에 참여하길 희망한다.


우리 집에서 가장 먼 거리의 지역은 제주도를 제외하고 왕복 8시간 거리이다. 자차와 대중교통 별반 차이 없다. 강연이라면 하루를 온전히 들여야 하지만, 당일에 다녀올 수 있다. 그런데 북페어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적게는 8시간 많게는 10시간가량 이어지는 편이다. 거리가 멀면 근방에서 잠을 자야 한다. 대개의 북페어와 독서 전은 작가의 숙소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큰 규모의 북페어는 참여사가 테이블 비용을 내기도 한다.


 5월의 어느 날, 부산일러스트 페어와 함께 비스트원페이지스 스토리기획전이 열리는 걸 알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받았다. 발신자는 부산일러스트페어 사무국이었다. 신청서를 낼지 말지를 두고 반나절을 고민했다. 내 사정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어서였다.




 용인에서 부산까지 이동해야 되어서 거리도 생각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주최 측에서 먼 거리의 창작자를 배려해 숙소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모션을 제공한다. 하지만 나는 1인 부스를 신청해야 해서 자격이 안 된다.


행사장인 벡스코 근처의 가장 저렴한 숙소를 알아보니, 다인실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1박에 2~3만 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하지만 도보로 벡스코까지 갈 수 없다. 벡스코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보통 1박에 10만 원 내. 외다. 주유비가 들더라도 짐이 많으니, 차로 이동할까 싶어 주차를 알아보았다. 이런… 게스트하우스는 주차가 불가하단다.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게스트하우스 비용보다 주차비가 더 들 것 같다.


행사 규모가 커서 부스 비용으로 약 20만 원도 내야 하는데. 숙소, 주유비, 주차비까지 더하면 부담이다.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믿는 구석이 있다. 온라인으로 판매한 두 달 치 책값과 강연료가 통장에 있다. 이걸 쓰면 된다. 사실, 책을 팔고 강연해서 받은 금액을 모아 기부를 할 계획이었다.




목표한 기부 금액이 있다. 이걸 사용하게 되면 기부할 수 있는 날이 더 멀어지게 된다. 처음으로 글쓰기를 지도하고 받은 수업료가 얼마 안 되지만 필요한 곳으로 보냈다. 기부하고 나서 얼마나 보람되었던지. 나와 가족이 아니라 아무 연결 고리 없는 타인과 사회를 위해서 무언갈 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했다. 그때의 고양됨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금 더 큰 금액으로 다시 한번 더 그 보람을 품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할 듯하다. 비스트원페이지스 스토리기획전에 참여하는 데 가장 마음에 걸린 게 이것이었다.


신청서를 제출한다고 해서 페어에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일이 연락을 주신 걸 보면 바로 참여 가능하다는 연락이 올 것만 같았다. 눈을 감고 스스로 질문했다.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판단일까?” 하고. 답을 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의 쓰임이 필요한 곳으로 가는 게 옳다고 여겼다. 생각해 보니, 나의 쓰임을 어딘가에 보태는 것도 기부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두 번의 북페어에서 그 의미 있음을 이미 경험했다.




어느 북페어에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들었던 날이었다. 그는 모두에게 친절할 필요 없다고 했다. 얼굴을 보면 감이 오지 않느냐며 책을 사줄 만한 사람에게만 친절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나는 몇 시간 동안 문득문득 그 말이 떠올라 행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나도 모르게 부스를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그만 한심함에 한숨이 나왔다. 그가 한 말을 곱씹다가 흐트러진 머릿속을 정리하며 마음을 굳혔다. 책을 사줄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르지 말자고. 나에게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재는 건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부스를 찾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북페어에 나올 이유가 있을까 싶은 것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작가는 독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북페어 참여의 목적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판매보다 독자와의 소통을 상위에 두기로 했다. 돈이 목적이 되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책을 구매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만 친절한 건 부스 방문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일에는 계산적이지 말아야 한다. 나는 지난 경험으로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계산은 불필요하다는 것을. 누군가 석연치 않다면 마음을 쓰지 않으면 된다.


언젠가 더는 호구가 되는 게 싫어서 관계를 저울질하기도 했었다. 나를 한껏 움켜쥐고서는 인간관계에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럴수록 마음이 빈곤해질 뿐 남는 게 없었다. 상대방이 나에게서 무언갈 얻는 일을 당연하게 여길지라도, 이미 그에게 마음을 쓴 뒤라면 후회가 없어야 한다. 후회할수록 괴로워지는 건 결국 나일뿐이다.




그날 누구에게나 친절할 필요 없다는 그 말을 뒤로하고 입이 닳도록 책을 소개하고 글쓰기에 관한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사사로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아는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난생처음 본 사람에게 꺼내 놓을 때, 그 심정을 말해 무엇할까. 말하지 않아도 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의 쓰임을 다했다. 체력이 다해 몸은 너덜거려도 마음만은 충만했다. 나의 쓰임을 다 한다는 말은 이러한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비스트원페이지스 스토리기획전에 참여신청서를 냈다.


나보다는 연락을 준 주최 측과 부스를 찾아줄 누군가를 먼저 생각했다. 돈을 써서라도 기꺼이 손을 잡겠다는 마음이었다. 내가 첫 책을 출간할 당시, 별 인연이 없는데도 추천사를 써 주신 분이 있다. 추천사를 부탁할 만한 인연이 닿아 있는 B 작가도 써 주지 않았는데. 추천사가 출판사로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은 날, 진심으로 감사했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고, 그러한 날이 안 올지 몰라도 누군가 내게 추천사를 부탁하면, 인연이 없다 하더라도 되도록 추천사를 써 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신청서를 제출하고 함께하자는 답변을 받는 데에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벡스코에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숙소를 검색했다. 에어비앤비로 센텀빅토리아 호텔을 예약했다. 다른 예약사이트를 이용하면 1박에 약 10만 원을 내야 하는데, 에어비앤비에서는 1박에 5만 6천 원이었다. 몇 날 며칠을 손품을 팔아서 제일 저렴한 비용으로 예약을 완료했다. 내가 묵을 호텔은 부산일러스트페어 사무국에서 프로모션으로 제공해 주는 호텔 바로 옆이다. 인터넷에는 도보로 1분 거리라고 하는데, 막상 가보면 5분 거리쯤 되지 않을까.




나처럼 멀리서 온 분들은 다들 같은 호텔로 가겠지만, 바로 옆이라서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쓸쓸하진 않을 것 같다. 하루 내리 부스를 혼자 지키다 보면 몸이 고되다. 처음 본 사이라고 해도, 서로 인사 이외 아무런 말이 오가지 않는다고 해도, 한 공간에서 고된 시간을 함께한 것만으로도 동지애가 생긴다. 의지 된다.


엊그제 참여사 리스트가 공개되었다. 해외 작가들도 있다. 국. 내외 일러스트 및 독립출판 창작자로 총 650개 부스가 채워질 예정이다. 그중 비스트원페이지스 스토리기획전은 24개의 부스로 운영된다. 리스트를 보는데 눈에 익은 참여사가 있다. 올해 초, 코엑스에서 개최된 리틀프레스페어에 참여했던 참여사, 작년 서울 소재 가가 77페이지 서점에서 한 2022년 크리스마스파티 및 독립출판 강연에서 만났던 참여사였다. 서울에서도 함께했었는데, 부산에서도 만나면 내적 반가움이 무척이나 클 듯하다.




2023, 부산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 초대합니다


- 기간 : 2023년 9월 7일(목) ~ 9월 10일(일) / 4일간


- 장소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 4 HALL


- 관람시간  

9월 7일 (목) 오전 10시-오후 6시

9월 8일 (금) 오전 10시-오후 6시

9월 9일 (토) 오전 10시-오후 6시

9월 10일 (일) 오전 10시-오후 5시


입장마감 *매표 및 입장 마감 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


유료라 티켓을 사전에 구입하셔야 해요.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 티켓 구매 안내 링크


http://busanillustrationfair.co.kr/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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