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가끔 묻는다. 요즘은 글을 쓰지 않느냐고. SNS에 일주일 이상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받는 물음표이다. 이럴 때면, 누군가 나의 글이나 소식을 기다리는 게 아닌가 싶은 미안함에 장문으로 답하곤 한다. 육아와 살림이 거의 전부인 별다르지 않은 근황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이다. 언제인가부터 미안하거나 고마울 때면 장문을 쓰거나 장황하게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시간과 마음을 내어준 누군가가 손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무언갈 주고 싶어서인 듯하다. 그런데 여기에도 부작용이 있다. 근래에는 절제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현대인은 바쁜 일상을 사는 만큼 감정 소모를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긴긴 글을 읽거나 긴긴 말을 듣는 건 피로한 일이기에 ‘절제’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잘 되진 않지만.
나는 여전히 매일 글을 쓴다. 쓰는 대로 SNS에 올리지 못할 뿐이다. 누군가는 단숨에 글을 써 내려간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4년째 글을 써오고 있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 많이 알 때보다도 아무것도 모를 때 되려 쉽게 느껴지기도 하기에, 글쓰기에 어려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나에게 글쓰기는 어쩌면 평생 쉽지 않을 것만 같기도 하다.
요즘은 한 편의 글을 쓰는데, 서너 시간이 걸린다. 한참 글쓰기에 열중하던 시기엔 1시간 만에 완성하던 날들도 있었다. 내 안에 쌓인 마음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냈었다. 당시엔 겁도 없어서 쓰는 족족 SNS에 올렸었다. 지금은 글을 쓰고 나서 SNS에 올려도 될지 한참 생각한다. 고민 끝에 브런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중 특정한 곳을 정해 올린다.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글은 컴퓨터 폴더에 저장해 놓는다.
최근 그림을 그리는 지인이 매일 쓸 게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저마다 지나온 삶이 있기에 얼마든지 매일 글을 쓸 수 있다. 나 역시 3년간 기억 속에 저장된 과거를 수없이 끄집어냈다.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무의식에 있던 기억이 의식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3년간 지나온 삶을 계속해서 꺼내놓을 수 있었다. 대부분 아픈 경험들이었다. 이제는 그 아픈 기억들을 꺼내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되었다.
나의 글쓰기는 과거의 아팠던 경험에서 벗어나 나아가는 중이다. 이러한 이유로 종종 무엇을 써야 할지 알 수 없는 날도 있다. 글쓰기의 샘물이 완전히 고갈되어 버린 것만 같아 처음 글쓰기를 했던 그때처럼 글감을 찾아 헤맨다. 글을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이 된 기분으로 책을 뒤적이고, 영화를 보고, 산책이나 드라이브를 한다.
신기한 일은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도 컴퓨터 앞에 앉으면 글을 쓰게 된다. 앞 문장의 꼬리를 물어가며 한 문장씩 구슬 꿰듯 문장을 꿰어가는 것이다. 에피소드가 있으면 조금은 수월하게 글이 써진다. 그러나 이벤트는 어쩌다 한 번씩이라 매일 이 비슷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들의 연속. 이러한 일상 속에서 매일 쓰는 글은 점점 사유로 향한다. 사유에는 생각, 느낌, 의견, 주장, 소감 등이 있다. 사유의 글쓰기는 이 모든 관계성을 두루 살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사유의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생각을 무척 해야 한다. 이렇게 해도 논리적이고 타당하지 않아서 뒤엎는 글이 많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자주 체감하고 있다. 손에 날개가 달린 듯 자유롭게 백지 위를 오가는 날도 있지만, 글쓰기가 막막한 날도 있다. 그러고 보니 자유로움과 막막함을 주는 글쓰기가 참 공평한 것 같다.
요즘처럼 글쓰기가 막막할 때면 매일 글을 쓰고 있는 어느 작가님에게 힘을 얻는다. 아무리 바빠도 그 작가님의 새로운 글은 꼭 찾아 읽는다. 몇 년을 이렇게 하다 보니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작가님의 SNS에 들어가 보는 게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 작가님의 글은 한 편마다 색깔이 다르다. 어느 글은 감성적으로, 어느 글은 사회 정치. 문화적으로 읽힌다. 내가 SNS로 읽었던 그 작가님의 글을 책에서 만나게 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글을 쓰면 쓸수록, 그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말하지 않아도 감각할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글을 쓰고, 많이 생각했을지에 대해. 좋은 글은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좋은 책은 읽는 이를 실행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 작가님은 매일 좋은 글을 쓴다. 나는 매일 글을 쓰고.
잘 쓰다가도 한 번씩 무너져 내릴 듯이 마음이 힘든 날이 있다. 그럼, 무너질 것만 같은 마음에 지지대를 받쳐 올리듯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쓴다. 그럴 수 있는 건 그 작가님으로부터 전해지는 어떠한 믿음이 있어서이다. 언젠가는 나도 매일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다.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하고 그 속에서 꾸준히 글을 써야겠지만. 꼭 그날이 올 거라고 확신한다. 글쓰기는 정직해서 배신을 모른다.
내가 할 일은 지금처럼 매일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다. 언젠가 그 작가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매일 완성도가 높은 글을 쓰는 게 신기하다며 천재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천재성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켜켜이 쌓인 세월이 증명해 주는 것이므로.
나는 여전히 매일 글을 쓴다. 미완의 문장으로 끝날지라도. 미완성된 글을 바라보며 여기에 인생이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매일 새로 태어나고 저물어가며 이어지는 생(生)도 글쓰기처럼 평생 어려울지 모르고 미완성일지 모른다고. 그러니 흔들리더라도 매일 글을 쓰듯 일상으로 걸어 들어가 오늘을 살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