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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Nov 01. 2023

천사들이 노니는 곳

2023, 인천 독서 대전

인천 독서 대전은 3일간 이어졌다. 북페어에 셀러로 참여하면서 이번처럼 준비가 수월했던 적은 없었다. 용인에서 인천까지 차로 편도 약 70km를 달려가야 하지만, 집에서 다니기에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의 공백이 생기면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듯하다. 유난히 엄마를 더 찾아대는 걸 보면. 두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10년 넘게 엄마와 매일 함께해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12살 10살이 되었다고 해도 엄마의 빈자리는 존재한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경제적으로 독립한다고 해도 심리적인 독립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언젠가는 육아와 살림에 치여 집을 떠나 있는 날을 갈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막상 그러한 날이 오니 몸은 편해도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엄마가 없으면 아빠가 그 빈자리를 대신해 준다는 걸 안다. 아이는 강인함을 지니고 있어서 염려하는 것보다 잘 지내줄 거라는 사실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엄마로서 늘 해오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책임감과 미안함은 있다. 내 의지로 하지 않는 것과 못하는 건 차이가 있다. 그래서 타지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장거리 북페어는 부담이다. 


이번 인천 독서 대전은 심적으로 평온했다. 집에서 장거리를 출. 퇴근하듯 다니면 몸은 지치지만, 필요한 물품을 구하러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장점도 있었다. 이러저러한 북페어에 참여하다 보면 충분히 준비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내 경우는 집안을 돌보아 놓는 게 우선이라 간혹 실수할 때가 있다. 프린트를 잘못해서 4,000원짜리를 ‘0’을 하나 더 붙여 4,0000원으로 책정해 간 적이 있었다. 아크릴로 된 책 거치대가 파손되어 사용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이번엔 필요한 물품을 사러 근처 다이소에 가거나 종이를 구해 매직으로 제대로 된 가격을 적어 놓을 필요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오늘 하루만 잘 버티고 집에서 다시 준비해 오면 된다. 나처럼 아이가 있는 엄마라면 이렇게 작은 부분도 크게 다가오기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인천 독서 대전이 열리는 장소는 집에서 1시간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두 아이가 등교하는 시간에 함께 집을 나섰다. 내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살던 고향 인천으로 향하는 길에 울지 않으려고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갔다. 고향을 떠올리면 향수에 젖어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든다. 저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나는 ‘인천’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 어린 시절은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함께였다. 그 시절엔 핸드폰이란 상류층만의 소유물이었다. 연락할 방법이 없으면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밤이 늦도록 계단 참에 앉아 언제 올지 모를 어머니를 기다리며 핑 도는 눈물을 참았다. 뒷산에서 동물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부딪히며 스산한 기운을 풍길 때마다, 엄습해 오는 무서움은 눈물이 되고 설움이 되었다. 무서움, 추위, 서러움을 견뎌내지 못하는 한계가 오면 집으로 뛰어 들어가 할머니에게 괜한 투정을 부리곤 했었다. 


그리움과 설움을 안고 할머니에게만 화를 잘 내던 짧은 머리를 한 나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 6학년에 왕따를 겪으며 놀림과 괴롭힘을 받던 나의 어린이 시절이,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에게 공부를 못한다고 문제아로 인식되었던 나의 청소년 시절이, 고등학생 때에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존재감 없는 나의 청소년 시절이, 인천 그곳에 있다. 물론, 좋은 기억도 많다. 인천은 행복했던 기억만큼 아팠던 기억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런데 10년 넘게 가정주부로만 살다 39살에 작가로 다시 찾아간 인천에서 크나큰 사랑을 받았다. 많은 분과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다. 3일 내내 나를 보러 찾아주었던 감사한 분도 있었다. 내 책을 인천 어느 시립도서관과 서점에서 보았다는 분도 한둘이 아니었다. 인천 이야기가 담긴 책이어서 인상 깊게 보아준 듯하다. 그 책을 쓴 작가냐며 신기해하던 몇 분의 다정한 눈동자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작가를 희망하는 분도 참 많았다. 한 분 한 분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너무나도 소중한 이야기는 한 번에 다 쓸 수 없다. 가슴 깊은 곳에 꼭꼭 눌러 켜켜이 쌓아 놓았다가 천천히 조금씩 하나하나 꺼내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휘몰아치는 고양됨에 엉켜 이야기의 조각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행복이 빚어낸 이야기들이다. 여전히 나의 고향 인천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난다. 다만, 이제는 아픔과 설움의 눈물이 아니다. ⟪외로움을 마주하는 자세⟫에 “이 책은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내미는 손이자,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서 내미는 손입니다.”, 하는 문장을 적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에 목마른 부끄러운 손을 인천 독서 대전에 참여해 주신 시민분들이 잡아 주었다. 행복에 겨워 눈물이 난다. 


3일간 만났던 인천 시민 대부분이 나를 인천 출신 작가라고 불러주었다. 인천 출신 작가를 알게 되어서, 인천으로 와 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분들의 마음을 오래 기억하며, 언제까지나 낮은 곳에서 쓰는 사람으로 묵묵히 살아가야겠다고 새로이 다짐했다. 마지막 날에는 견본책까지 모두 판매했다. 3일간 얻은 수익금은 45만 3천 원이다. 지난 B 시에서의 일러스트페어 적자를 만회했다.


내 안에 살고 계신 신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 음성에 천사들의 노랫소리가 섞여 있다. 그 노랫소리를 따라 걷는다. 천사들이 노니는 곳 베이비박스. 그곳엔 사랑이 오가고 있다. 내가 왜 사랑이 고픈 채로 자랐는지, 왜 유치원 교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을 갖추었는지, 왜 난독증과 지독한 싸움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는지, 왜 출간의 기회가 운명처럼 찾아왔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배고픈 사람은 누군가의 굶주림을 알아볼 수 있듯, 사랑이 고픈 사람은 비어 있는 사랑의 곳간을 볼 수 있다. 천사와 나는 마주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천사와 함께 노래한다. 사랑을 품에 가득 안은 채. 


신은 언제나 나와 함께였고 늘 옳은 길을 알려준다. 지나온 삶의 모든 고통과 시련은, 언제 어디서나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걸 일깨웠다. 마음의 눈을 뜬다는 건 이런 것이었다. 눈을 감아도 빛을 볼 수 있고, 눈을 떠도 어둠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갖는 것. 난 언제라도 빛을 따라 걷는다. 99%의 사람들이 어둠을 따라갈지라도. 모두가 안 된다고 해도 단 1%의 가능성을 믿으며 빛을 따른다. 이 험한 세상에 진정한 선의를 가르친 건, 내가 가진 결핍과 고통스러운 시련의 날들이었다.      








인천 독서 대전, 오지은 작가님 공연과 김겨울 작가님 강연을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


인천 독서 대전이 열렸던 근처에 위치한 작은 서점 '문학 소매점' 좋은 책이 많아요 :)
문학 소매점 근처에 있는 카페 '서니구락부' 커피도 저렴하고 맛있어요. 인천 관광지역 안내 책자가 있어서 좋아요 :)






타 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와 주신 채령님께 깊이 감사드려요.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선물받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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