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함을 기댈 수 있는, 심리적 안정 기지

우울함

by 이수아

코로나 블루로 이유 없이 우울하고, 코로나 레드로 분노에 찬 사람이 많다고 한다. 오늘 나의 우울한 감정은 코로나 블루의 여파는 아니다. 울적한 데에는 이유가 있지만, 글로 쓰지 못할 듯하다. 때로 쓸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정신과 의사는 우울할 때 찾을 수 있는 ‘심리적 안정 기지’가 있으면 좋다고 했다. 심리적 안정 기지가 없다면 그게 무엇인지 찾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의 심리적 안정 기지는 할머니이다. 할머니가 하늘의 별이 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강아지가 왜 그럴까, 이리 온.” 하고 말하며 나를 꼭 안아주었을 텐데. 애석하게도 할머니 품에 안길 수 없다.




감정이란 늘 예고 없이 찾아와 놀라게 한다. 원인을 해결하면 우울함이 잦아들 텐데 그러지도 못한다. 해결할 수 없는 일 앞에 무력해진 채 우울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잠을 청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기분전환이 되기도 하니 기대하며 자리를 펴고 누웠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술을 좀 마셨다.


적당한 알코올 섭취는 숙면에 들게 하고, 기분이 좋아지게 도와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알코올도 소용없었다. 신나는 음악의 멜로디는 나의 마음과 상반되어 그런지 놀림을 받는 듯했다. 누군가의 세계로 들어가면 나아질까, 해서 책을 폈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한 페이지도 다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언젠가 술을 마시고 이상한 글을 썼던 날 이후 맨 정신이 아니라면 글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글을 쓰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울적한 마음을 달래는 게 우선이라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한 편의 글에 나를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지만, 글에는 나의 일부가 있다. 글을 쓸 때면 누군가와 말을 하는 것만 같다. 글쓰기는 나와 나누는 대화이기도 하다.




글을 쓰지 않던 삼 년 전에는 울적함을 친구에게 기대었다. 친구에게 나의 감정을 말할 땐 괜찮다가도 혼자가 되면 다시 우울했다. 그러니까 우울함이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마음 어딘가에 접어둔 것이었다. 나의 울적함을 글로 풀어놓아도 우울한 감정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지금 이 글을 쓰는 건 효과가 있어서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이 년째 되던 해에는, 6개월간 글 쓰며 우는 게 일이었다. 그간 눌러 놓으며 살았던 설움을 배설물처럼 글에 토해 놓으면서 많이도 울었다. 진이 빠질 때까지 울기도 했었다. 하도 울어서 기력을 다하면 그제야 잠이 들었다.


나의 삶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아픔을 반복해 썼다. 그러다 눈물을 짜지 않고서는 마주할 수 없었던 일을 눈물 없이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글쓰기에 치유의 힘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처음 한두 번은 아픔을 글로 쓰고 나서 “글쓰기에 무슨 치유의 힘이 있어, 거짓말”이라며 배신감에 젖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오해였다는걸 알았다. 글쓰기로 과거를 치유하기를 원한다면, 그 일을 담담하게 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써야 하는 것이었다. 도돌이표처럼 같은 글을 반복해 써야 한다. 글쓰기로 치유되지 않은 과거가 있는데, 아직 덜 써서일 것이다.



인간은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저마다 다르다. 이처럼 우울함도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지만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다. 우울함이 극에 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지금의 나처럼 울적함을 달래보고자 잠을 청하고, 술을 마시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무기력해질 정도로 우울하다면 우울증일 가능성이 있으니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일 년 전, 좋은 크리닉을 찾았던 날이었다. 우울함이 한동안 이어져서 잠을 자는 건 아닌데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상담이 받고 싶었는데 약을 먼저 권했다. 병원을 잘 못 찾아온 듯싶어 다른 병원에 가보았다. 몇 군데를 가보아도 상담 시간은 최대 20분이었고 하나같이 약을 권했다. 그때는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인가 보다 해서 전문가의 말을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된 건 대게 우리나라의 정신과는 상담을 통해 마음을 치료하기보다 약을 먼저 권한다는 사실이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병원이 있는데 거리가 멀어서 가지 못했지만, 그곳은 가능하면 약 처방보다 상담이 우선이었다. 대부분의 정신과에서 쉽게 약을 처방 하지만 찾아보면 상담을 우선으로 하는 곳이 있다. 이러한 병원을 찾아가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 약에 기대는 것 또한 잠시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일 년 가까이 우울증 약을 먹다가 서서히 줄여가며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심리상담 선생님은 솔루션을 제시하지 않으신다. 그저 나의 말에 귀 기울여 경청해 주신다. 이렇게 마음을 꺼내 놓는 건 꽤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친구에게 마음을 꺼내어 놓는 것과는 다르다. 전문가의 경청에는 ‘당신의 마음을 알아요. 당신이 옳아요.’ 하는 무언의 시그널이 있다.




심리상담 선생님께 말하듯 글에 나의 마음을 기대어 본다. 나는 글에도 사람처럼 생명이 있다고 여긴다. 우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기댈 때에는 사람보다 글이 더 낫다.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존재라서 감정의 전이가 일어나지만, 글은 감정의 전이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글을 쓰면서 감정과 조금씩 분리된다. 며칠 지나 써 놓았던 글을 다시 읽으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도 생긴다.


지금 쓰고 있는 글에 왜 우울한 마음이 되었는지 구구절절 쓰지 않았음에도 울적함이 어느 정도 가신듯하다. 글에 나를 담아내며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 속에 심리적 안정 기지가 있다. 글쓰기가 할머니의 자리를 온전히 대신할 수는 없지만, 나만의 심리적 안정 기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무리 같은 말을 반복해도 나무랄 사람 없고, 나의 마음을 기대려다 상대의 마음을 듣게 되는 일도 없고, 괜히 말했다는 후회도 들지 않고, 무거운 감정을 기대어도 상대의 에너지를 빼앗지 않는 안전한 곳이 글쓰기이다. 백지를 검게 물들이는 여기는, 나만의 심리적 안정 기지.


술을 마셔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상한 글을 쓰진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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