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4학년인 첫째는 주 4일 하교 후 영어학원에 간다. 오늘도 영어학원을 가기 위해 학원 상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첫째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왔다. 여학생 손에는 두 권의 책을 들려 있었다. 자연스레 책에 눈길이 갔다.
책에는 바코드가 붙어 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여학생은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들고 물끄러미 제목을 번갈아 보았다. 그 책은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 《나는 왜 친구와 있어도 불편할까?》였다.
호기심에 여학생에게 몇 학년이냐고 물었다. 여학생은 4학년이라고 답하고 다시 책을 보았다. 첫째와 같은 학년인데 훨씬 성숙하고 어딘가 어두워 보였다. 멋쩍어진 나는 “저도 책 좋아해요. 책을 들고 있길래 궁금해서 물어봤어요.”하고 말했다. 여학생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첫째와 여학생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학원으로 들어갔고, 나도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책을 들여다보는 여학생 얼굴이 생각났다. 11살인 나를 떠올렸다. 친구 관계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었다. 요즘 아이들 발달이 빠르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듯했다.
내가 친구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건 20살이 넘어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앞가림 잘하는데 왜 나만 이럴까, 다들 모 난데없이 잘 어울리는데 왜 나는 자꾸만 눈치 보는 걸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러다가도 바삐 돌아가는 생활에 금방 잊어버렸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와 삶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친구와 가끔 만나다 보니 만날 때마다 깊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우리의 주요 대화 내용은 인간관계이다. 친구와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어도 인간관계와 삶에 대한 답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우리의 대화는 한바탕 수다로 마무리 지어진다.
여학생처럼 나를 둘러싼 관계에 답을 찾고 싶을 때면 책을 펼쳐 보는 습관이 있다. 가장 많이 보는 책은 문요한 작가님의 《관계를 읽는 시간》이다. 저자는 인간관계에 바운더리가 있다고 말한다. 바운더리는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경계(선)이자 통로이다. 저자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을 때 타인이 허락 없이 침범하면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고 말한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불편함을 느꼈다면 바운더리가 지켜지지 못해서라고 한다.
삶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하고 생각에 잠길 때면 김미경 작가님의 《인생 미답》을 펼친다. 저자는 누구의 삶이어도 답이 있는 인생은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차피 삶에는 답이 없으니 이 길로도 갔다가 저 길로도 가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된다. 어느 길로 가든 일단 발을 디딜 수 있게 용기를 주는 책이다.
책은 인생의 조언이 필요할 때 멘토가 되어 준다. 여학생이 책에서 찾으려고 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나처럼 인생의 조언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시대는 맡은 역할과 사회가 정한 기준을 무시하며 살아갈 수 없다. 누구나 삶 앞에서 자유로 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여학생도 언제고 다시 인생의 물음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인생엔 본래 답이 없으므로 책에서 완전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충분히 고민하는 시간은 의미 있다. 무엇이든 충분히 고민해본 사람은 비 온 뒤 식물이 더 잘 자라는 것처럼 마음도 조금씩 성장할 거라고 여긴다. 인간관계 든, 삶이든 여러 갈래의 길을 가보고 시행착오를 겪을수록 전보다 더 여물어진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 때 비로소 알게 된다.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