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삶에 존재하지 않는, 나

by 이수아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작가님들이 쓰신 유년 시절의 글에는 가난했던 삶이 자주 등장한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가난’이라는 단어는 먹거리가 풍족한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 가난함은 굶주림이 아닌 마음의 허기이다. 위로, 힐링, 치유, 마음공부, 자존감 등 이러한 말이 많이 언급되는 이유는 마음이 고픈 사람이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마음의 허기를 자주 느낀다. 마음의 허기를 알아차릴 수 있는 건, 먹고사는 게 문제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혼 초 생활이 빠듯했을 때 천 원 때문에 유모차를 밀고 4시간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집안에서 하루에 15시간씩 컴퓨터에 매달려 일하며 하루살이처럼 살았었다. 그때도 마음이 풍요롭지 않았지만, 빠듯한 살림 걱정으로 마음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그러니까 넉넉하진 않아도 생활이 유지될 만큼의 돈이 있어야지만 자신의 마음을 돌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음을 돌보는 데에는 독서와 글쓰기가 도움이 되었다. 에세이, 소설, 시 등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있다. 그중 소설은 다른 장르와 차별된 매력이 있다.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젖어 있을 땐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이 참 좋았다. 어쩌면 나는 현실도피를 하기 위해 계속 소설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청소년기 때도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날이 있었다. 현실을 잊고 싶을 땐 공상을 하거나 막연히 꿈을 꾸었다. 어른이 되어 있는 나를 종종 떠올리면서 현실에서 멀어져 갔다. 그 당시 나의 눈에 비추어진 어른의 모습은 자유로워 보였다. 자유로움만 있으면 현재의 삶에서 도망치지 않아도 될 거라 여겼었다. 어른이 되면 저절로 인생이 특별해질 줄 알았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도 삶은 특별하지 않았다. 자유로움도 없었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리저리 치여 삶이 버거운 날엔 “내 삶이 특별해지는 과정일 거야.” 하고 하루를 버텼다.


아이를 낳고 주부로 10년을 살다 보니 현실이 바로 보였다. 특별한 삶, 자유로움은 어른이 되어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삶의 만족은 다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각종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나는 특별해.”하고 자부한 것이었다. 저마다 바라는 특별함과 자유로움이 있다. 누구나 현실도피하고 싶은 마음과 이유도 있을 것이다. 수없이 의미 부여를 하며 자부해도 마음 한구석은 늘 허기졌다.


마음의 허기는 다른 사람 눈엔 잘 안 보이는 듯하다. 마음이 가난한 나를 특별하게 여겨준 몇 사람이 있었다. 가정을 꾸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사람, 남편의 퇴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 유산의 아픔이 있는 사람, 마당 딸린 집에 살고 싶은 로망이 있는 사람, 부모님을 여읜 사람, 딸만 있는 사람으로부터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다른 누군가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순간, 보통 사람은 특별해진다.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예전부터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이 특별히 여기고 부러워하는 삶에는 정작 내가 없어요.”




글을 쓰며 나를 가만 들여다보던 어느 날, 왜 마음이 고픈지 알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삶의 특별함, 현실도피하고 싶은 마음, 마음의 허기는 꿈이라는 하나의 그물망으로 묶여 있었다.


꿈은 현재 가지지 못한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나의 마음을 더 가난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그 욕구를 채워야 한다. 꿈을 이루어도 또 다른 꿈을 꾸는 이상, 다른 말로 하면 결핍을 하나하나 다 채우지 않는 이상, 마음의 허기는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꿈은 이루었을 때보다 꿈꾸고 있을 때 만족감이 더 크다고 한다. 그러나 가난한 마음을 평생 끌어안고 산다고 해도 꿈을 이루고 싶다. 여러 개의 결핍 중 하나라도 채워지면 지금보다는 덜 마음이 허기질 테니까.




나의 삶에 내가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나를 증명할 수 없어서이다. 내가 가진 결핍, 이 결핍이 만들어낸 마음의 허기, 허기를 채우지 못해 가난해진 마음.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 고리를 언젠가 끊어내고 싶다. 그럼 당당히 나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꿈을 이루려는 것이다.


사회적인 기준이 정해 놓은 안정적인 직업, 남들이 우러러보는 명예, 부모님에게 등 떠밀려하는 일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았다.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찾기까지 많은 길을 돌아왔다. 이 길이 아니면 저 길로 들었다가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다시 되돌아가려다 길을 잃기도 했었다. 어렵게 찾은 길목에 서 있다. 나의 존재감을 찾기 위해 꿈을 향하고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점점 꿈에 가까워질 것이고, 결국 이루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Never giv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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