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빈자리

어머니

by 이수아

1992년,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만 해도 일하는 어머니는 드물었다. 1학년이 되던 해 3월이었다. 학교를 입학하고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그날은 빗줄기가 굵었다. 학교 교문 앞에는 어머니들이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어머니들은 하교하는 아이들을 불러 얼른 우산을 씌워주었다. 어느새 친구들은 다 가고 없었다.


우산이 없었던 나는 학교 담벼락에 기대섰다. 담벼락 지붕 끝을 타고 내려오는 빗방울을 손바닥으로 튕기며 어머니가 오길 기다렸다. 비가 운동장을 자기 세상으로 만들 때까지 날 데리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는 먹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쏟아지는 비는 나를 가린 듯했다. 낮과 저녁을 묶어놓은 날씨 탓에 하늘은 잿빛이었다. 빗소리로 가득 차오른 텅 빈 운동장, 내 마음도 비어버렸다. 몸에서 무엇인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어머니를 기다리던 인내는 얼마 가지 못해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실내화를 보조 가방에 넣고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보조 가방을 머리 위로 뒤집어쓰고 집을 향해 달렸다. 금방 흠뻑 젖어버려 시야가 흐릿했고, 집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다음날, 그다음 날도 하교 후 어머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집에 가서 가게로 전화 걸어야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엄마 집에 언제 와?”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해!”

“보고 싶단 말이야. 언제 올 거야? 빨리 와”

“야 이년아, 일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계속 때 쓸 거야? 끊어!”

“......”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기면, 곧바로 다이얼을 눌렀다.


“끊지 마. 언제 올 건지 말해주면 되잖아.”

“이년이 할 일이 없어서 전화질이야? 돈 벌어야 해서 못가.”


나는 어머니에게 한 소리를 들어야지만 다시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였다. 친구가 동네 근처까지 인천 지하철이 연결되었다고 했다. 친구는 손바닥만 한 종이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우리 언제 부평 나갈래? 부평엔 주안보다 볼 게 더 많대.”

“진짜? 빨리 날 잡자. 기대돼.”


친구에게서 받은 종이를 펼쳐보았다. 지하철 노선표였다. 구불거리며 교차된 선들은 마치 미로 같았다. 노선표에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역은 ‘신도림’이라는 글자였다. 나는 동춘역에서 부평역까지, 부평역에서 신도림역까지 빨간색 펜으로 줄을 그었다. 지하철만 타면 어머니 가게로 갈 수 있을 것이었다. 빨간 선을 보면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해 가을의 어느 날, 벼르고 벼르다 학교를 마치고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다. 동춘역에서 부평역으로 가 용감하게 노선표를 보며 부평역에서 서울행으로 갈아탔다. 어머니에게로 갈 생각에 마냥 신이 났던 내가 당황한 건 신도림역에 내린 뒤였다. 신도림역은 출구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몰라 서성이다 벽면에 붙은 지도 앞에 섰다. 가게가 있는 곳이 어디일지 짐작하며 손가락으로 지도를 훑었다.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손가락은 2번 출구에서 멈추었다.


2번 출구로 나가는 계단을 올랐다. 커다란 길 양쪽으로 하늘까지 닿을 듯 건물이 줄지어 있었다. 오가는 차 소음과 사람으로 붐비는 신도림은 별천지였다. 나는 어머니가 일하는 가게 간판을 찾으며 걸었다. 막다른 길로 들어선 것 같았을 땐,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저기요. 길 좀 여쭤볼게요. 영진금속을 찾고 있는데요. 혹시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비철금속 공장이 모여 있는 곳에 있어요.”

“저쪽 길로 가보시겠어요?”




알려주는 길로 걷다가, 이게 아니다 싶은 순간엔 다른 길로 걸었다. 걷다 보니 목이 말랐다. 붉은 노을이던 가을 하늘은 곧 어둠이 내렸다. 아무리 걸어도 어머니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서울의 밤거리는 생경했다. 큰 나무가 늘어선 길로 들어서자 드높게 드리워진 나무 그림자가 길을 덮었고, 오가는 사람 얼굴을 하나로 만들었다.


모르는 남자가 내 옆을 스쳐 지날 땐 등줄기에 땀이 맺혔다. 쌀쌀해진 시월의 밤바람을 맞아 몸이 떨렸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버렸다. 서울 한복판에서 밀려 나오는 눈물을 옷깃으로 연신 훔쳤다. 화려한 서울 밤 도시 소음은 울음소리를 묻어갔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눈을 타고 흘러내리는 흔적을 닦고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다리가 아파서 더는 못 걷게 되어서야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서울 길은 마치 미로 같았다. 넘어서지 못할 벽에 부딪히는 줄도 몰랐다. 핸드폰이 있었지만 혼이 날까 봐 어머니에게 전화 걸 엄두가 나질 않았다. 길에 서서 울고 있는데 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추었다. 스르륵 내려간 창문 뒤로 어떤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너 왜 울고 있니?”

“엄마 가게를 찾고 있는데 못 찾겠어요.”

“부모님 전화번호 아니?”

“전화하면 안 돼요! 엄마한테 혼날 거예요.”

“아줌마가 전화하면 괜찮을 거야.”




어머니와 통화를 마친 아줌마는 나를 차에 태웠다. 모르는 사람을 따라 차에 탔지만,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아줌마는 큰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큰 건물을 올려다봤다. <홍익병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줌마는 어머니가 곧 이쪽으로 올 것이니,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올 때마다 어머니인지 고개를 빼고 찾았다. 택시가 내 앞에 섰다. 택시에는 어머니가 타고 있었다.


“수아야, 어서 타.”


나는 어머니가 타고 온 택시에 올랐다. 혼이 날까 봐 고개를 떨 군 채 발끝만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영진이에요. 국밥 3개 가져다주세요.”


늦은 밤 서울에 온 나를 보고 놀란 듯한 아버지의 눈은 곧 초승달로 변했다.


“아니, 우리 둘째 딸내미가 여기까지 어쩐 일이셔?”


어머니에게 눈치가 보여 쭈뼛거리며 말했다.


“지하철 생겼잖아. 그거 타고 왔지.”


곧 국밥이 도착했고 어머니는 컴퓨터 책상 한쪽에 신문지를 깔았다. 우리 셋은 머리를 마주하고 국밥을 먹었다. 뜨끈한 국에 밥을 말아 허기진 속을 채우니 추웠던 몸이 녹아내렸다. 내가 먹어본 국밥 중 제일 맛있었다. 어머니는 국밥을 다 먹고 새벽녘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 가게로 뻔질나게 연락하던 나는, 그날 이후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지 않게 되었다. 동춘역을 지날 때마다 이것을 타고 어머니에게로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청소년기에는 친구를 많이 찾는 시기여서 어머니들이 허전함을 느낀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언니와 동생보다 유독 어머니를 많이 찾는 아이였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면서 어머니를 찾는 빈도가 줄었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다.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 밤늦게까지 마당에 있는 계단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리는 날이 많았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날들은 그리움이 되었고 마음 한쪽 어딘가에 어머니의 빈자리를 만들었다.


내가 어머니를 찾을 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있었더라면 어머니를 덜 찾았을까. 어머니가 오지 않을까 봐 떨던 불안이 조금은 덜했을까. 따뜻한 말 한마디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밤이다. 나는 그리움을 안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결혼 십일 년 차를 맞이하고 있다. 스물 중반 무렵 어머니와 하나의 사건을 겪은 후 안부 전화조차 잘 걸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오랜 세월 원망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그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이해가 되지 않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고 원망도 사라졌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의 등은 쉴 새가 없다. 예전만큼 주문이 없다고 하지만, 주문이 밀려드는 날엔 형광등 아래에 낮과 밤을 등지고 환갑이 넘은 나이를 잊는다. 어머니에게 평일과 주말, 설과 추석은 아무 의미가 없다. 어머니의 일터는 출구 없는 미로 같다. 한번 들어서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미로 속에서 어머니가 청춘을 보내고 노년을 맞이했다. 먹고사는 건 이렇게나 힘든 일이다.




어머니가 좋을 때도 미울 때도 그리웠다고, 여전히 그립다고 품에 안겨 투정 부리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러나 속으로 삭이고 만다. 서른이 넘었으니 어른답게 보이려는 건 아니다. 어머니와 나를 위해서 삭이는 걸 선택했을 뿐이다.


어머니에게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그리움이 사라지고 빈자리가 채워질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그리움이 만들어낸 마음속 빈자리에는 어머니가 있다. 빈자리를 어루만지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머니가 나의 마음에 있다는 걸 감각할 수 있다.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는 영원히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자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 빈자리에 어머니를 기다리는 어린 내가 있다. 보조 가방을 뒤집어쓰고 빗속을 달리던 내가, 툭하면 어머니에게 전화 걸던 내가, 서울 한복판에서 어머니를 찾던 내가 빈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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