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사랑

어머니

by 이수아

대학을 입학 한지, 한 달이 되어갈 즈음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대학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 마주 보고 세 명의 남학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지나 몇 걸음 더 갔을 때였다.


“저기요.”


세 명 중 청바지에 남색 티를 입은 남학생이었다. 그는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나를 한쪽으로 잠시 불렀다. 대뜸 자신을 소개했다. 어느 과 몇 학년인지 알려주고 연락처를 물었다. 그와 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눈에 반했다거나 호감을 느낀 건 아니어서 따로 만나진 않았다. 5월의 어느 날, 그가 줄 게 있다고 했다. 어느 건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 어딘가에서 만났다. 그는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블랙로즈를 구하느라 힘들었어요.”


나에게 꽃다발과 향수를 건네주었다.


“이걸 저한테 왜…….”


그는 오늘이 성년의 날이라며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작은 종이봉투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병에 든 건 향수였다. 그는 성년의 날엔 꽃과 함께 향수를 선물 받는 날이라고 했다. 나는 그와 이십 대 초반을 지나 중반을 함께 맞이했다.




그와 함께한 시간 속에 처음인 게 많았다. 닭갈비와 순댓국을 먹어본 것도, 주문진 겨울 바다에서 인스턴트커피를 마신 것도, 해외여행도, 지켜온 순결도 모든 게 처음이었다. 그는 나보다 일곱 살 많았고 복학생이어서 먼저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원하던 직장에 취업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이 년이 되어 갈 즈음이었다. 그가 반지를 선물했다. 커플링을 해보는 것도 처음 이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는 내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말했다.


“결혼해 줄래.”


양쪽 부모님께서 우리의 교재를 알고 계시기에 당연히 그와 결혼할 줄 알았다. 그는 황금보자기에 싸인 무언갈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가게 일로 오지 못하셨고 집에 어머니만 계셨다.

어머니는 그와 방에서 이야기 나눌 동안 거실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왜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려는지 알 수 없었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불안감이 들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방에서 큰 소리가 오갔다. 어머니가 먼저 문을 열고 나오셨고 남자 친구가 울면서 뒤따라 나왔다. 그는 어머니 손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


“뭐 하는 거야? 어서 일어나.”


그의 팔을 잡고 일어서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더 할 말이 없으니 나가라고 했고, 그는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애원했다. 단단히 화가 난 어머니는 주방에서 가위를 가져왔고 내 머리카락은 바닥으로 흩어졌다.


“수아한테 손대지 마세요.”


울며 집 밖을 나서는 그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그를 따라 나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검푸른 파도가 몸을 쓸어내렸다. 어머니에게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를 여쭈었다. 나보다 나이가 너무 많다고 했다. 일곱 살 차이가 뭐 그리 크다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결혼을 허락해 주실 때까지 집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현관에 무릎을 꿇자 어머니는 날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며칠을 현관에 꿇어앉아 있었다.




더는 그가 찾아오지 않던 날은 여름과 가을이 손잡고 있었다. 내 생에 두 번 다신 없을 크나큰 사랑을 남기고 간 그였다. 불면증으로 잠을 통 못 잔 탓에 푹 자고 싶어서 수면제 두 갑을 샀다. 한 알, 두 알, 세 알을 먹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머지를 한 번에 다 털어 넣고 나서야 몸에 온기가 퍼졌다. 온기 가득한 베일에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그다음 기억은 없다.


의식을 차렸을 땐 속에서 무엇인가 솟구쳐 올랐다. 내 몸이 잘 못 되었다는 걸 알았다. 진득한 검은색 액체를 먹고 토해내길 반복했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끝내고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내 존재 위에 아무도 두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다. 몸이 회복되려는지 한동안 신생아처럼 자고 또 잤다. 그동안 부족했던 잠을 몰아서 자려는 사람처럼 눈을 뜨고 있는 시간보다 감고 있을 때가 더 많았다.


맥주 몇 모금도 못 마시던 나였는데, 술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었다. 일 년이 넘도록 술과 함께 살았다. 그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은 그의 직장이 있는 원주의 어느 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했었다. 혹시라도 그를 만나면 도망이라도 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어 병원 반대편 도로에서 주저앉아 울다가 돌아왔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면 다 잊게 돼.”


어머니는 마음을 잡지 못하는 나를 안타까워하셨다. 어머니 말씀대로 아이 키우면서 한 남자만 바라보며 살고 싶었다. 결혼해서 집도 떠나고 어머니 품에서도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다시 찾아왔을 땐 현실적인 사랑이었다.




2012년 1월 폭설이 내리던 날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남편의 손을 잡았다.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산 지 십일 년이 되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는 한 폭의 추상화가 되었다.


“나에게서 소중한 걸 빼앗아갔잖아.”

결혼해서도 원망은 어머니를 향해 아픈 화살을 꽂아 넣었다. 어머니를 원망하며 살던 세월이 길었다. 그 원망이 잦아든 건 두 아이를 키우면서였다. 그와 나를 갈라놓았던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이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알고 계실까,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어머니, 나의 어머니. 이름만 불러도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만큼 그리운 그 이름 어머니. 다시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어머니의 결혼 반대를 존중하겠습니다. 다만, 기회를 주세요. 어머니의 강압이 아닌 서로의 의지로 이별할 수 있도록 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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