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나무가 심장을 내리쳤던 그때 : 철제소 어머니

어머니

by 이수아

내가 초등학생이던 90년대에는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이었다. 어린 나의 눈에는 일하는 어머니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회사에 나가는 게 싫었다. 다른 친구들 어머니처럼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랐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면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늘 어머니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밤낮없이 일하던 어머니는 몸살이 나야지만 쉴 수 있었다. 몸져누운 어머니의 곁을 기웃거리는 일이 어린 내가 할 수 있던 전부였다. 종종걸음으로 안방과 마루를 오가며 어머니를 살폈다. 방에서 신음이 새어 나오면 어머니의 이마에 손을 얹어 보고 물을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어린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짜도 흥건히 젖은 수건에서는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물이 어머니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면 옷깃으로 닦아내었다.

“엄마, 이제 괜찮아?”

어머니는 눈을 꼭 감은 채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저 거친 숨소리만이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핼쑥해진 어머니의 얼굴은 다 낫지 않은 듯해 보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창백한 얼굴을 짙은 화장으로 가리고 가게로 갔다. 몸져누운 어머니와 집에서 보낸 그날이 참 좋았다.

어머니는 늘 바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느라 다정하지 못했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자식에게 무관심하고 냉랭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왜 엄마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야 하는데.”


사춘기였던 나는 화에 차올랐다. 삶에 치여 지친 어머니의 울분 섞인 짜증이 새어 나오는 날에 더 화가 끓어올랐다.


“남들은 가족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 나는 무뚝뚝한 딸로 자라났다. 남들에게는 살갑지만, 어머니에게만큼은 얼음물보다도 더 차가웠다.


“엄마는 날 돌보지 않았잖아.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알아? 돈 버는 거밖에 모르잖아. 엄마는!”


스무 살이 돼서 어머니를 향해 가시 돋친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가슴에 돋아난 가시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훌쩍 커버린 딸 앞에서 어머니는 무력했다.


한결같은 어머니의 무표정에 뾰족한 말도 지긋지긋해져 갈 즈음 사랑이 찾아왔다. 그가 나와의 미래를 말할 때면 빨리 결혼하자는 말이 듣고 싶었다. 어머니와 내가 서로를 아프게 하며 지내는 것보다 결혼해서 집을 떠나는 게 나을 것이었다. 나에게 결혼은 도피처였다.




드디어 그가 청혼했고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신혼집으로 가면 과거는 지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철 모르는 아이처럼 마냥 신이 났다. 예쁜 드레스를 입을 생각에 신났고, 아기자기한 살림살이를 고르는 재미에 흠뻑 취했다. 예물은 어떤 걸로 할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지 온라인 속을 유영하며 매시간이 즐거웠다.


3개월의 결혼 준비 끝에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결혼식 전날엔 다들 잠이 안 온다던데 나는 꿀 같은 숙면에 들었다. 내일이면 다시 태어나는 거야, 새로운 삶을 사는 거야,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며 이불을 덮었다.


결혼식 날 아침까지도 어머니의 얼굴이 잘 기억나질 않는 걸 보면 어머니는 안중에도 없었던 듯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신부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였다. 화사하게 화장한 어머니의 얼굴은 코끝만 빨갛게 도드라져 있었다.


“코부분만 화장이 벗겨졌잖아. 화장하는 날은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고 화장을 고쳐야지. 이게 뭐야.”




결혼식장에 입장하기 위해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하객들 앞에 섰을 때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두가 날 축복해 주고 있었다. 한 발씩 내디디며 점점 주례사 단상에 가까워졌다.

그가 서 있는 단상 근처에 다다르자 좌우로 나란히 앉은 양가 부모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시어머니는 환하게 웃었고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울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탯줄이 있는 것이었다. 결혼이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이어진 탯줄을 자르는 거라는 걸 알지 못했다. 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게 되는 그 무엇이 가슴을 파고들어 눈물이 되었다.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주례사가 끝나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시어머니께서 애 닳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기쁜 날 와 이리 우노. 내가 다 눈물 날라한다. 울다 지친다아이가. 너한테 잘 할기다. 고만해라 이제.”



10대 때는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20대 초반엔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지배당한 채 하느님의 곁으로 가려고 했었다. 하느님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셨을 때 병상에서 눈을 떴다. 어머니에게 나 같은 건 있으나 마나라고 생각해왔는데, 결혼식 날이 돼서야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폐백을 드리고 식사 후 공항으로 향하기 전 어머니는 흰색 봉투 하나를 쥐여주었다. 그 속에는 돈과 편지가 들어 있었다. 신혼여행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읽었다. 한 줄 한 줄 읽는 게 너무나 힘겨웠다. 가슴에 돌덩이가 얹어진 것처럼 무거웠다. 목이 메어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어서 짧은 숨만 얕게 내쉬었다. 하와이로 가는 11시간 동안 흐느끼다 잠들길 반복했다.


“무슨 일이세요? 어디 불편하신가요?”

두 명의 승무원이 오가며 쉴 새 없이 나를 주시했다. 말할 기운이 없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편하신 곳 있으시면 말씀을 해주세요.”


남편이 된 그는 아무 말 없이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모든 게 잘 못 됐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간 살아온 삶을 부정하고 싶었다. 편지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날 사랑하는 그 마음이 거기에 있었다.




먹고사는 게 힘겨웠던 어머니, 외갓집 기둥인 어머니, 돈 버는 걸 멈추는 순간 자식도 어머니의 형제들도 멈춰버린다는 현실은 서러움이 되어 가슴을 밀고 들어왔다. 남자들이 일하는 공장지대에서 홀로 버텨냈던 어머니였다.


며칠을 잠 한숨 자지 못한 채 일하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자식들 보러 새벽녘 어둠을 달려올 수 있었던 건 자식을 향한 사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입학식, 졸업식, 운동회, 학부모 상담에 오지 못해 늘 죄인으로 살아온 어머니의 그늘을 알지 못했다. 자식 입에 뭐라도 하나 더 넣어주려고 밤낮없이 일해 온 어머니의 책임감 속에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너무 뒤늦게 알았다.




언젠가 먹방 유튜버 사이에는 문래동 2가 철제소의 식당을 찍는 게 유행이었다. 최근 좋아하게 된 그림책 작가님의 작업실도 그곳에 있다. 먹방 유튜버와 그림책 작가님은 약속이나 한 듯 영상 속에서 같은 말을 했다. 철제소가 많아 예전엔 어둡고 무서운 곳이었다, 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강목 같이 느껴졌다. 절대로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나무 한 자루가 심장을 내리치는 것만 같았다. 20대 꽃 같은 나이 때부터 60대인 지금도 그곳은 여전히 어머니의 삶의 터전이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고막을 찌르고 기름 냄새로 온몸이 기름에 절여질 것만 같은 그곳에 어머니의 청춘이 있고, 우리 남매의 어린 시절이 있고, 외갓집의 밥줄이 있다.


힘닿을 때까지 계속 일을 하고 싶다는 어머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 사람도 다 나가떨어지는 공장 일을 노년기에 접어든 어머니에게 무리라며 말렸었다. 그러다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을 떠올렸다. 자식이 장성했다고 해도 부모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건 무엇일까.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일이 아닐까. 어머니께서 마음 편히 일하실 수 있도록 나는 아이들의 엄마로, 언니와 동생은 사회인으로 각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는 건 무엇일까. 사랑한다고 말하고 곁에 있어 주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었다. 멀리 있어도, 함께 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도 어머니의 사랑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가족의 평안을 떠받치고 있던 건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어머니는 나의 기둥이자 버팀목이다.


“이제는 제가 당신의 기둥이 되겠습니다. 강풍이 불어와도 쓰러지지 않도록 당신의 삶을 떠받들겠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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