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7년 발표한 국가별 성인 1인당 월간 독서량은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 이에 비해 한국은 0.8권으로 세계 최하위권(166위)입니다. 통계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하위권을 맴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죠.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를 보면 연간 성인 종합 독서율(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비율)은 43.0%로 나타났습니다. 성인 10명 중 6명가량은 수험서 잡지 등을 제외한 일반 도서를 연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직전 조사 시점인 2021년 대비 4.5%포인트 감소했으며, 1994년 독서실태조사를 처음 실시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인데요. 독서 인구는 해마다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문맹률은 1% 안팎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문해력은 위기 상황이죠.
독서에 익숙해지려면 책을 가까이서 접하고, 몰입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합니다. 책을 매개로 하는 문화공간, 행사, 커뮤니티가 많이 생겨나야 책 읽는 사람도 많아지는 법인데요.
올해 부산지역에는 책과 관련된 문화공간이 2곳이나 사라졌습니다. 지난 7월에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자리한 '아테네학당'이 문을 닫았고, 오는 20일에는 부산 동구 초량동 '창비부산'이 운영을 중단합니다.
2023년 3월 보수동 책방골목에 거대한 책 여러 권을 나란히 꽂아놓은 듯한 외관을 가진 건물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책방골목 문화관 바로 옆에 위치한 이 건물은 철거 후 오피스텔로 재건축될 예정이었으나 지역 문화예술계와 상인회 등의 설득과 건축주의 결단 덕분에 복합문화공간으로 살아남았죠.
개발수익을 포기하고 책방 상인과 상생을 택한 것인데요. 기존 건물에 있던 책방 3곳도 그대로 새 건물에서 영업을 이어가도록 조처했고, 2·3층은 카페, 4층은 문화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사람들은 책방골목의 정체성을 응축한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생겼다며 좋아하며 곧 부산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학당과 연계한 지역 문화 사업은 전무했습니다. 부산테크노파크가 개업 초기 6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 명사 초청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 외에 2년 6개월 동안 부산시나 중구로부터 행사 대관 제의가 들어온 적 없었죠.
아테네학당은 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며 '반짝' 인기를 끌었으나 이후 경영난에 시달립니다. 직접 운영하던 카페도 민간에 넘겼으나 적자를 면치 못했고, 결국 지난 7월 건물 매도를 추진합니다.
이로부터 약 3개월 뒤 '부산역 앞 문화 명소' '책 좋아하는 여행자를 위한 부산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을 탄 초량동 '창비부산'이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한국 대표 문학·인문 출판사인 창비가 운영하는 창비부산은 "오랜 내부 논의를 거친 끝에 오는 20일까지만 문을 열고, 운영을 접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는데요.
1920년 지은 '100년 건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인 옛 백제병원 건물 2층을 임대해 2021년 4월 운영을 시작한 창비부산은 4년 7개월 만에 전국권 출판사의 보기 드문 '지역 밀착 문화 공간 실험'을 멈추게 됩니다.
부산역 앞 번화가에 자리한 창비부산이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을 다량 가동하며 그동안 문화 명소이자 여행자의 인기 방문지 구실을 톡톡히 했는데요. 이곳에서는 연간 100여 개 문화모임이 300회 이상 꾸준히 열렸고, 초중고생 프로그램이 활발했습니다. 독서 행사 등에 참여할 의사를 밝힌 방문객을 대상으로 독자카드도 수천 장 발급해 독서문화 활동 기반도 다졌죠. 문학인의 작품과 성취를 조명하는 '작가의 방' 행사에는 부산 문인도 다수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SNS와 유튜브 영상에서는 '부산 핫플'로 자리하며 관광에도 한몫했습니다. 창비부산 집계에 따르면 2023년까지 평균 3만 명이던 연간 방문객은 2024년 4만여 명으로 늘었고, 올해 10월까지 4만2000여 명이 찾아왔습니다. 방문객의 절반은 부산역을 찾은 여행객, 절반은 부산시민으로 추산하죠.
창비부산은 자사가 펴낸 책을 일부 판매하지만, 큰 틀에서 누구나 무료로 이용하는 책·독서·문화 공간으로, 창비의 사회 공헌 활동 성격이 강한데요. 그런 상황에서 임대료·운영비 상승과 종이책의 운명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출판 환경 급변, 그리고 2년 전 새 대표이사 취임 등과 맞물리면서 운영 중단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지역사회는 창비부산의 퇴장이 크게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