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가 쏘아올린 '새벽배송 금지' 논란

by 연산동 이자까야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택배 배송 차량이 도착합니다. 한참 동안 물건 내리는 소리, 카트에 싣는 소리, 복도를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이 소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들리는데요. 최근 '새벽배송'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심야시간 배송 제한을 제안한 사실이 알려진 뒤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논쟁이 시작됐죠.

택배.jpeg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연합뉴스

새벽배송 규제 논쟁은 지난달 22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과로 문제 해결 방안 중 하나로 '0시~오전 5시 배송 제한'을 제안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시작됐습니다. 해당 안은 민주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출범한 협의체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처음 나왔는데요. 새벽 시간대 고정 노동은 수면장애·심혈관 질환·암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만큼, 가장 문제가 되는 시간대 노동을 제한해 최소한의 노동자 수면·건강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택배노조는 "새벽배송을 아예 없애자는 게 아니라 오전 5시 출근조가 긴급한 새벽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이라고 해명했지만 한 번 불붙은 새벽배송 논쟁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보도가 나오자 유통업계, 소비자단체 등은 바로 반대의 뜻을 밝혔습니다. 여기에 정치권까지 가세했습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민주노총과 민주당 정권의 '새벽배송 전면 금지' 추진은 많은 국민의 일상을 망가뜨릴 것이다.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정의당 장혜영 전 의원은 "목숨 걸지 않는 사회를 만들 책임이 정치의 몫"이라고 반박하고, 민주당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돈을 더 벌고 싶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결정적인 전제가 빠져 있다. 사람들은 정말 자유롭게 이 위험한 노동을 선택하는가"라고 지적하며 '정치권 싸움'으로 번졌죠.


소비자와 소상공인도 새벽배송 금지로 인한 불편에 우려를 표합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새벽배송 전면 금지는 소비자의 불편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그 피해는 단순히 소비자나 자영업자의 불편에 그치지 않고, 물류 종사자와 연관 사업자 등 광범위한 사회 구성원의 일상과 생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중소상공인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새벽배송은 대기업만의 사업이 아니라 수많은 중소 식품 제조업체·납품업체·농가가 시스템에 맞춰 성장해 온 유통 생태계"라며 "새벽배송 종사자와 중소상공인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이런 근무 형태를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노동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는 "일부에서 제안하는 새벽배송 전면 금지에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노동하는 시간대보다 전체적인 노동시간이 문제라는 건데요. 노동자의 과로를 막기 위해 주 5일 근무제 정착, 주 최대 야간작업시간 50시간 이내 제한, 적정 수입 보장 등을 대안으로 내놓았습니다. 김사성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 위원장은 "지금 새벽배송을 금지하면 1만여 명이 넘는 배송기사와 물류센터 노동자가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며 "지금보다 택배 수수료를 높여 택배 물량이 줄어도 금전적인 압박을 느끼지 않게 한 뒤,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쿠팡노조도 "'오전 7시까지 배송 완료'라는 새벽배송 조건은 그대로 둔 채 '0시~오전 5시 배송 제한'만 강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새벽배송 금지에 반대했습니다. 또 새벽배송을 금지하면 배송 기사와 물류센터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고, 야간 수당을 받을 수 없어 임금 저하가 발생한다고 강조했죠. 정진영 쿠팡노조 위원장은 "새벽배송을 아예 없앤다고 했으면 납득했겠지만, 초심야시간(0시~오전 5시) 배송은 제한하고 오전 7시까지 배송을 완료하라고 해서 반대한 것"이라며 "2시간 만에 배송을 끝내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짧은 시간 안에 배송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견딜 수 없다. 터무니없는 제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현장에서는 한 목소리로 '새벽'이라는 시간대보다는 '과도한 노동 시간'이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주 5일 근무제 정착' '주 최대 야간작업시간 50시간 이내 제한'을 강조하지만, 수입 걱정 때문에 일을 줄일 수도 없다고 토로했죠.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택배 분류 작업 등을 지금처럼 배송기사가 하는 게 아니라 물류 인력 보강을 통해 업무 부담을 줄이고, 배송 수수료를 배송기사에게 지금보다 많이 떼줘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과로·수입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심야노동 문제를 완전히 배제하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며 "사람이 밤에 장시간 노동을 하면 분명히 몸의 변화가 생기고, 10~20년 뒤 심야노동으로 병든 노동자를 사회가 감당해야 할 순간이 온다. 반드시 심야노동을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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