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먼저 꺼내겠습니다. 20년이 더 지난 일입니다. 당시 기자는 사회부 경찰기자로 일선 경찰서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운전 중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전화를 건 상대방은 대뜸 자기를 당시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조직폭력단체의 보스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순간 기자는 장난전화라고 판단해 운전 중이니 10분 후 다시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10분 후 다시 그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에도 상대방은 자기가 조직폭력단체의 보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 순간 기자는 살짝 고민했습니다. 장난 전화? 아니면 진짜 보스? 아주 공손하게(?) 전화를 받아야 할지, 버럭 화를 내야 할지 갈등했습니다.
취재 중이어서 몹시 바빴지만 그래도 두 번이나 전화를 걸었는데 사연이나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퉁명스럽게 용건을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조직폭력단체 보스라고 주장한 상대방은 당시 언론에서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사건에 대해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 몰아간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꼭, 바로 잡아달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자가 담당할 내용은 아니어서 다른 기자에게 연결하겠다고 말하고 끊었습니다. 그 사람 정말 보스일까요?
당시 기자가 출입한 경찰서는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조직폭력단체 두 곳을 관리했습니다. 두 단체가 그곳에서 태동했기 때문입니다. 친분이 있었던 담당 형사에게 보스라고 소개한 사람의 전화번호를 보여줬습니다. 형사는 조직폭력단체 보스의 집 전화번호가 맞다고 확인해 줬습니다. 보스의 집은 동네에 유명했습니다. 밖에서 대문과 담장만 보이고 집이 전혀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규모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저 자신입니다. 만약 귀찮아서 짜증을 냈거나 버럭 화를 냈다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예전 이야기를 꺼낸 건 부산이란 도시와 조직폭력단체와 끊어지지 않는 질긴 인연 때문입니다. 한때 '부산=조폭 도시'란 이미지가 강하게 덧씌워져 있었습니다. 그건 영화의 영향이 컸습니다. 2001년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가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배우 유오성 장동건 등이 뛰어다닌 거리가 인기를 끌었지만, 그것보다 조폭을 미화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후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년)까지 조폭을 다룬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부산은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물론 조직폭력단체는 영화에서만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부산에서 태동한 조직폭력단체들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 단체들의 활동은 그동안 언론 사회면에 수시로 소개됐습니다.
오늘 하나 더 추가하겠습니다. 부산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칠성파와 신20세기파 조직원 19명을 구속하는 등 총 45명을 검거했다고 10일 밝혔습니다. 흉기 등으로 상해나 폭행을 일삼은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등)입니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칠성파와 신20세기파 조직원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보복과 재보복으로 이어지는 피의 악순환을 반복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 폭행이 해운대구 마린시티, 부산진구 서면, 중구 중앙동 등 부산 도심 번화가에서 벌어졌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경찰은 "이번에 적발된 조폭은 대부분 20~30대 신규 조직원으로 이들을 관리 대상으로 편입했다. 앞으로도 지역 안정을 저해하고 시민의 일상을 위협하는 조폭 범죄 행위와 이를 공모·지시한 배후 세력까지 엄정 대처할 방침"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은 영화 대사로 대체하겠습니다. '강철중: 공공의 적 1-1'(2008년)에서 조직폭력단체 보스로 출연한 배우 정재영은 극 중 말합니다. "이조시대에도 있었고, 로마시대에도 있었고, 사람 사는 곳에 없어지지 않고 늘상 있는 거, 조직폭력배다."
정말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