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2호기 계속운전, 부울경은 불만

by 연산동 이자까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지난 13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2호기의 계속운전(수명 연장)을 승인했습니다. 고리 2호기는 1983년 4월 상업 운전을 시작해 40년간 전력을 공급해 오다 2023년 4월 설계 수명이 만료되면서 가동정지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2년 7개월가량 멈춰 있던 고리 2호기는 이번 결정으로 2033년 4월까지 수명이 연장돼 내년 2월께 본격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원전을 대체할 만한 전력 공급원이 없는 상황에서 원전이 폐쇄될 것을 우려하던 이들은 정부의 계속운전 결정에 환영했지만, 원전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부산 울산 경남 주민은 걱정이 가득합니다.


그간 고리 2호기는 정권에 따라 운명이 정반대로 바뀌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탈원전' 기조에 따라 운영 허가 만료일에 맞춰 영구 정지될 예정이었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친원전' 기조로 바뀌며 탈원전 정책이 폐기되면서 계속 가동되는 것으로 결정됐죠. 이재명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에는 다소 부정적·유보적 입장인 반면, 수명이 끝난 원전이라도 안전성이 확보됐다면 에너지원으로 계속 활용해야 한다는 '원전 실용주의'를 표방해 왔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가동 기한이 지난 원전도 안전성이 담보되면 연장해서 쓰고, 짓던 것도 잘 지어야 한다"면서도 "(신규 원전 건설 대신) 풍력·태양광을 대대적으로 건설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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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2호기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계속운전을 신청한 국내 원전 10기 가운데 첫 시험대로 그동안 첨예한 입장 차를 보인 원전업계와 탈핵·환경단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노후 원전에 대한 계속운전 여부가 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원전 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입니다. 고리 2호기의 계속운전 여부는 3·4호기, 한빛 1·2호기, 한울 1·2호기, 월성 2~4호기 등 2029년까지 수명 연장 심의를 받는 원전의 운명을 결정할 가늠자로 여겨졌죠. 이번 결정으로 나머지 노후 원전도 고리 2호기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정부의 고리 2호기 계속운전 허가 배경에는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수적인 전력 확보가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한국에 우선 공급하기로 한 GPU 26만 장을 가동하는 데만 원전 1기 용량인 1GW(기가와트)의 전력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바람·날씨 등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전력 생산이 들쭉날쭉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게다가 정부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국가목표(NDC)를 확정해 탄소에너지 사용도 자유롭지 않죠. 정부로서는 노후 원전을 재가동해 전력을 확보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셈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AI 진흥을 목표로 내건 만큼,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입니다.


많은 이들이 정부의 결정에 환영하는 반면, 부산 울산 경남 주민의 불만은 커집니다. 우선 노후 원전의 안전성 우려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고리 2호기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중대 원전 사고가 발생한 적 없던 1980년대 설계돼 최신 안전기준에서 보면 미흡한 점이 적지 않습니다. 또 전체 원안위원 9명 가운데 3명의 임기가 만료돼 6인 체제인 상태에서 고리 2호기 운명을 확정했습니다.


노후 원전은 배관·용기·케이블·콘크리트 구조물에 방사선 손상이 누적돼 잦은 고장과 복구가 불가피합니다. 2022년 6월에는 고리 2호기가 재가동 승인을 받고 일주일 만에 정지되는 사고도 발생했습니다. 고리원전 반경 30㎞ 안에는 해운대 수영 기장 남구 동래 등 고밀도 주거지역이 포진해 있는데 안전성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원전의 재가동 결정은 지역 주민의 우려를 키울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 시설·부지도 없습니다. 사용후핵연료는 고스란히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에 쌓입니다. 원전 위험을 감수하며 전기를 생산하는 것도 모자라 사용후핵연료 처분도 지역에서 감당하지만 상당량의 전기는 수도권으로 흘러가는 불평등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시대 재생에너지 확충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이재명 정부 또한 흐름에 발맞춰 '재생에너지 대전환'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걸었죠. 정부가 고리 2호기의 계속운전을 결정한 것은 재생에너지 확대까지 원전을 활용하는 '에너지믹스' 전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전 재가동은 재생에너지 시장의 성장 동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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