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따라 다르게 내는 범칙금

by 연산동 이자까야

범칙금제는 행정청이 교통법규 등 법규 위반자에 대해 일정액의 납부를 통고하고, 통고를 받은 자가 기간 내에 납부하면 범칙 행위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지 않지만 납부하지 않으면 형사 절차를 진행하는 제도입니다. 과태료와 마찬가지로 행정법상의 제재입니다. 현행 범칙금은 소득과 무관하게 동일 금액을 부과합니다. 고소득자, 저소득자를 구분하지 않죠.


겉보기엔 공정합니다. 하지만 처벌의 본질은 금액이 아니라 체감되는 불이익입니다. 범칙금 5만~10만 원은 소득에 따라 부담의 경중이 다릅니다. 현행 범칙금 제도가 안고 있는 불균형은 오래전부터 '법 앞의 평등'이라는 문구와 충돌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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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6년부터 경제적 능력에 따라 벌금을 달리하는 제도 도입을 여러 차례 검토했습니다. 2009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도 "생계형 픽업 차량과 벤츠의 위반 범칙금이 같은데, 그것을 공정사회라고 볼 수는 없다"며 개정론을 폈습니다. 지난 2017년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은 범칙금 액수를 재산 규모와 연계해 부과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국회입법조사처는 "소득이 투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득이 드러나는 봉급생활자만 불리해진다"는 등의 신중론을 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재력에 따라 범칙금을 차등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죠. 그러면서 "교통 범칙금을 5만 원, 10만 원 낸다면 서민에게는 제재 효과가 있지만 재력 있는 사람은 별 상관없으니 계속 위반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동일한 경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재산이나 소득 수준에 따라 범칙금을 다르게 매기는 '차등 범칙금제; 도입 필요성을 꺼내든 것입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헌법상 평등권 침해 소지 등의 지적이 나옵니다. 세금이나 건강보험료 등은 '응능부담' 원칙에 따라 재산·소득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내야 형평성에 맞으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인 범칙금에 차등을 둬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소득·재산의 은닉·축소 가능성과 이를 파악·적용하는 데 드는 행정력의 낭비, 재산·소득 파악이 어려운 외국인의 특혜 논란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차등 범칙금제가 성공하려면 선행 조건이 많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자산과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 현행 법체계와의 충돌 문제도 살펴야 합니다. 성급하게 정책을 추진했다가 논쟁만 키운 채 좌초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정교한 검토와 설계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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