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해양 수도?

by 연산동 이자까야

부산을 나타내는 가장 '웃픈' 표현은 '노인과 바다'입니다. 부산을 상징하는 또 다른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해양 수도'입니다.


'노인과 바다', '해양 수도'. 공통분모는 바다지만 간극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노인과 바다가 부산이 처한 암울한 현실을 드러낸다면 해양 수도는 부산의 미래가 걸린 간절함입니다.

해수부.jpeg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임시청사 본관. 김동하 선임기자


해양 수도는 그동안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세기부터 거론됐습니다. 아주 오래된 표현이죠. 21세기 들어선 해양특별시란 새로운 단어도 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 묻고 싶습니다. 부산 시민은 과연 바다를 잘 알고 있을까요? 흔히 부산 출신이라면 바다와 아주 친숙할 거란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물개 수준은 아니더라도 수영도 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해운대나 남·수영, 영도나 사하구 같이 바다를 접한 곳에 살지 않으면 바다를 보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1년에 몇 번 정도입니다.


거기다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은 고사하고 바닷물에 몸을 적시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기자는 한여름에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동안 부산 시민에게 바다는 직접 들어가서 체험하는 친숙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바라보는 대상이었습니다.


기자는 10년 전 '해양스포츠' 관련 기획 시리즈 기사를 썼습니다. 당시 부산의 바다는 관상용이란 다소 허무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다로 나가려면 몇 개의 규제를 넘어야 합니다. 바다 앞에 눈에 보이지 않는 철책이 몇 겹 세워져 있는 셈입니다. 바다는 부산 사람들에게 가깝고도 먼 대상입니다.


이제 해양 수도를 보겠습니다. 기자는 2017년 해양 수도와 해양특별시를 비교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은 '부산 해양특별시 설치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했습니다. 그러자 해양특별시와 해양 수도의 차이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차이는 간단합니다. 해양 수도는 선언적 의미입니다. 부산이 해양 수도라는 걸 상징할 뿐입니다. 반면 해양특별시는 특별법에 따라 법적 지위를 보장받습니다. 가령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고, 지역 특성에 맞는 해양수산 정책을 자체적으로 세워 실행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부산의, 부산에 의한, 부산을 위한' 해양수산 정책이 가능합니다. 반면 해양 수도는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합니다. 부산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습니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했습니다. 정부가 부산으로 옮겼다는 뜻입니다.


예전 해양 수도를 외칠 때와 다른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그땐 해수부가 다른 지역에 있었습니다. 부산으로 오기 전엔 세종에 있었습니다. 바다와 관련된 대부분 정부 정책은 세종에서 수립됐습니다. 부산은 정부 정책에 맞출 뿐이었습니다.


해수부가 부산으로 온 건 부산이 우리나라 해양 정책의 중심이 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전 해양 수도가 선언적 의미와 상징이었다면 이젠 현실이 됐습니다.


부산은 해수부를 찾아 세종으로 갈 필요 없이 부산에서 해수부와 바다 관련 정책을 함께 수립하고 실행합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으면 쉬운 예를 들겠습니다. 청와대 하면 무슨 생각이 가장 먼저 납니까? 대통령이죠. 이처럼 때론 특정한 공간이 특정한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해수부가 23일 오후 2시 부산 동구 임시청사에서 개청식을 열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합니다. 이젠 부산=해수부=해양 수도가 성립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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