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차등요금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더 커졌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17일 내년도 업무계획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기후부는 “대규모 (전력) 소비처의 지역 분산을 유도하고 전력망 건설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송전 거리 등을 고려한 차등요금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차등요금제 시행과 관련해 ‘도입하겠다’ ‘도입 방안을 마련하겠다’와 같은 확답형 언급을 했던 정부가 ‘검토’라는 모호한 표현을 쓴 것은 사실상 처음입니다. 게다가 시행 시기도 애초 ‘2025년 상반기 중’에서 ‘2025년 중’으로, ‘2026년 이후’에서 ‘2026년 하반기 이후’로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차등요금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차등요금제는 발전소 위치·전력 자급률·송배전 비용 등을 반영해 지역별로 전기 요금을 달리 책정하는 제도입니다. 발전소와 송전탑이 몰려 있어 전력 자급률이 높은 지역은 전기 요금을 낮추고, 전력 자급률이 낮은 지역은 요금을 상대적으로 비싸게 책정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차등요금제 도입은 지연되고 있습니다. 내년 6월 3일 이재명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을 지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집니다. 정부 입장에선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전력 자급률이 낮아 전기 요금이 오를 가능성이 큰 수도권 지역에 불리한 내용이 담긴 제도를 서둘러 시행할 이유가 없죠.
비수도권은 하루빨리 차등요금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전국 17개 시도 중 올해 1~7월 전력 자급률이 가장 높은 곳은 월성원전 등이 있는 경북(262.6%)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원자력발전소가 밀집된 전남(203.2%) 부산(155.0%) 울산(93.8%)의 전력 자급률도 높은 수준을 나타냈습니다. 석탄발전소를 보유한 충남(180.5%), 대형 발전소가 많은 강원(163.4%), 액화천연가스 등의 발전소가 있는 인천(180.6)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비해 서울의 전력 자급률은 7.5%에 불과합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전기 요금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수도권에는 전기 생산시설이 거의 없어 필요한 용량 대부분을 다른 곳에서 끌어옵니다. 이 때문에 생산은 비수도권에서, 소비는 수도권에서 하는 전력 미스매치가 발생합니다. 게다가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송전 비용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함께 부담하고 있습니다. 특히 석탄·화력발전소와 달리 원전 소재 지역은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에 따른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차등요금제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정책이라는 반발이 나옵니다. 저렴하게 전기를 사용하고 싶으면 전력시설을 가까운 곳에 건설하면 됩니다. 안전함과 쾌적함을 원한다면 다른 지역의 전기를 비싸게 사서 쓰면 될 일이죠.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주력 산업들은 대부분 전력 소모량이 많습니다. 산업용 전기 요금이 점점 오르면서 기업의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차등요금제가 시행되면 기업은 전기 요금이 싼 곳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출 위주 산업이 항구 근처에 공장을 세우듯, 전력 소비가 많은 산업이 발전소 주변으로 모이게 되는 것이죠. 기업이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균형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등요금제 도입이 늦어지면서 서울과 부산이 같은 전기 요금을 지불하는 불합리가 지속되고, 수도권 집중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