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와 'V0'가 나란히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누군지 아시겠죠? 'V'는 윤석열 전 대통령, 'V0'는 김건희 여사를 말합니다. 통상 정·관가에서 대통령을 'V'라고 칭하는데 'V0'는 대통령보다 앞선다는 의미로 불렀습니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여사는 전직 대통령 부부가 나란히 실형을 선고받는 헌정사 첫 사례로 남게 됐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 체포 방해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어 통일교 금품수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 여사가 28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영부인 출신이 형사범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처음입니다. 이로써 전직 대통령 부부는 헌정사에 깊은 발자국을 남기게 됐습니다.
그런데 TV와 유튜브 등으로 생중계된 김 여사의 1심 선고를 접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우인성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 위반 및 정치자금법 위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여사에게 징역 1년 8개월과 추징금 1281만5000원을 선고했습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지난달 결심 공판에서 구형한 징역 15년 및 벌금 20억 원, 추징금 9억4800여 만원에 한참 못 미치는 형량입니다.
앞서 지난 21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1심에서 특검의 구형량(징역 15년)보다 8년이나 많은 징역 2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는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김 여사의 1심 선고는 살짝 혼란스러웠습니다.
선고와 관련된 뒷말을 방지하려고 했는지 의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재판부는 선고 시작과 함께 "옛말에 형무등급(刑無等級), 추물이불량(趣物而不兩)이라는 말이 있다"며 "법의 적용에는 권력자든, 권력 잃은 자이든 예외나 차별이 없어야 하고 무죄추정의 원칙과 '불분명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같은 법의 일반 원칙도 권력자 혹은 권력을 잃은 자에게 다르게 적용될 수 없다"고 엄격한 법 적용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고대 중국 사상가로, '법가' 사상을 대표하는 한비자의 표현입니다.
재판부는 김 여사에게 적용된 3개의 혐의 중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자본시장법 위반), 명태균 여론조사(정치자금법 위반) 관련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둘 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김 여사는 2010년 10월∼2012년 12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가담해 8억1000만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8월 구속기소 됐습니다. 애초 이 사건은 2019년 7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2024년 7월 검찰이 대통령경호처 부속시설에서 김 여사를 12시간 비공개 조사한 뒤 불기소 처분을 내려 의혹을 증폭시켰습니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세력에 자신의 계좌를 맡길 때 시세조종을 인식하거나 이를 용인했을 여지는 있지만, 이들과 공동정범으로 범행을 실행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공동정범이 성립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7년 가까이 김 여사를 따라다닌 꼬리표였는데, 1심이 의혹을 해소한 모양이 됐습니다.
또 재판부는 명태균 씨로부터 58회에 걸쳐 2억7000만여 원 상당의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받은 혐의에 대해 명 씨로부터 무상 여론조사를 제공받은 사실은 있지만 이에 대한 재산상 이득을 취득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한동안 정국을 뒤흔들었던 명태균 씨와의 관계도 1심에서 정리되는 모양새로 보였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김 여사가 통일교 측으로부터 교단 현안 청탁과 함께 고가 물품을 전달받은 혐의는 일부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이 부분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날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 윤 전 본부장에게서 통일교 현안 청탁과 함께 정치자금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선고공판도 열렸습니다. 윤 전 본부장은 1년 2개월, 권 의원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통일교와 관련된 사건은 모두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전직 대통령 부부 재판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들에게는 1심 판단을 앞둔 재판이 아직 9개가 남아 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이 7개, 김 여사가 2개입니다. 여기다 각각의 1심 결과에 따라 항소를 한다면 앞으로도 전직 대통령 부부가 법정에서 선고받는 모습을 수시로 봐야 합니다. 재판이 워낙 많아 전직 대통령 부부는 자기들에게 적용된 혐의를 다 기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