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폭력 시효 배제, 이번엔 이뤄낼 수 있을까

by 연산동 이자까야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의 총책임자였던 박처원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치안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역사에 남는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지난달 25일 독재 정권 시기 신군부에 맞서는 인사들에게 각종 고문을 자행한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이 사망하며 사회적 파장이 일었습니다. 제주 4·3 사건 78주년이었던 지난 3일 이재명 대통령은 “제주 4·3 사건 생존 희생자인 유가족에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며 “다시는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이 희생되고 고통받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겠다”고 전했습니다. 국가 폭력 범죄의 상흔은 아직 지워지지 않고 한국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한민국에서 국가 폭력으로 국민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나치 전범을 처벌하는 것과 같이 영구적으로 책임지도록 반드시 만들어놓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 폭력 범죄에 대한 형사상 공소시효, 민사상 소멸시효를 완전히 폐지해 살아있는 한 끝까지 형사 책임을 지고 상속 재산이 있는 자손들까지 그 범위 내에서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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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국가 폭력 범죄에 대해서 형사적으로는 가해자가 처벌될 수 있는 기간인 공소시효와 민사적으로는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인 소멸시효를 폐지해 형사·민사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방침입니다. 이미 여러 관련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기도 하죠.


2024년 12월 국회는 ‘반인권적 국가범죄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국가범죄 시효 배제법)’을 통과시킨 바도 있습니다. 법안에는 수사 또는 공소 제기·유지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 사건의 실체를 조작·은폐하기 위해 저지른 직권남용, 불법 체포·감금, 폭행·가혹행위 등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와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법무부는 “해당 법안의 일부 내용은 위헌 소지 등 법체계적 문제나 민생범죄 대응 공백 등의 부작용에 대해 각계에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며 “재의요구 건의를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최상목 전 부총리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그대로 시행될 경우 기본 원칙인 과잉금지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며 “적법하게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까지 무기한으로 형사·민사 책임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공소시효를 소급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습니다. 헌법 제13조에는 ‘형벌불소급’ 원칙이 있습니다. 형벌불소급은 과거에 발생해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행위에 대해서는 나중에 만든 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이 때문에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에 대해서는 법안이 만들어져도 소급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과 국가 폭력 범죄에 한해 소급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섭니다.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이 대통령이 밝힌 국가 폭력 범죄의 공소시효와 소멸시효 배제, 서훈 취소 근거 마련 등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과 의지에 공감하고 환영한다”고 전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4·3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4·3이 남긴 교훈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토대 위에 더욱 굳건히 새겨질 수 있도록, 사실과 기록에 기반한 충실한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해 역사 왜곡과 폄훼에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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