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왜 조종사 수색에 필사적이었나?

by 연산동 이자까야

지난 주말 전 세계가 한 명의 생사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조종사로 알려졌지만 이후 무기체계장교(WSO·Weapons Systems Officer)로 확인됐습니다. 그는 미군 전투기 F-15E에 탑승했다가 이란 방공망에 격추된 뒤 구출된 미군 무기체계장교를 말합니다.


얼마나 관심이 많았는지 딱 하나의 사례를 들겠습니다. 미국의 미래 예측 베팅 웹사이트에서 무기체계장교의 운명을 놓고 내기가 벌어졌다가 삭제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론은 전 세계가 알고 있습니다. 미군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대담한 수색 및 구조 작전 중 하나를 완수했다"고 자화자찬했습니다.


구출 후일담이 전 세계 언론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작 구출된 장교의 정확한 계급과 이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전례를 감안하면 언젠가 '전쟁 영웅'으로 화려하게 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땐 자세한 구출 또는 탈출 과정도 함께 소개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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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영화 한 편 소개해 드립니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에너미 라인스'입니다. 오언 윌슨과 진 해크먼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적지에 추락한 F-16 전투기 조종사 스콧 오그래디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사방에 적들이 우글거리는 적진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조종사와 맹렬하게 뒤쫓는 적군 그리고 조종사를 구출하기 위해 출동한 미 특수부대의 처절한 사투가 그려집니다.


이번 미군 무기체계장교의 탈출 또는 구출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무기체계장교의 목숨 건 탈출과 이란군의 추적, 미 특수부대의 구출 작전 등이 펼쳐졌을 겁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과정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왜 미국과 이란은 그토록 필사적으로 무기체계장교 구출과 생포에 나섰을까요?


일반적인 이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조종사 모두에 해당됩니다. 조종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됩니다. 비용은 상상 이상입니다. 그만큼 조종사는 중요한 국가 전략자산입니다. 또 조종사는 중요한 군사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국가는 조종사 탈출 훈련을 하고, 조종사를 구출할 특수부대를 운영합니다. 여기에 "단 한 명의 전우도 뒤에 남겨 두지 않는다(No Man Left Behind)"는 미군 특유의 전통이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금까진 겉으로 드러난 배경입니다. 이제부턴 속사정을 추측해 보겠습니다. 일단 미국과 이란의 사정은 동전의 양면과 비슷합니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지닌다고 보면 됩니다.


무기체계장교를 누가 먼저 구출 또는 생포하느냐의 문제는 중동전쟁 승패에 영향을 줄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습니다. 미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가 이란 진영 깊숙하게 들어가 기어이 구출하면서 '천조국'의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만약 미국이 구출에 실패했다면? 아마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의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란군에게 생포 또는 사살된 미군 장교의 영상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순간 미국 내에서 반전 목소리가 터져 나왔을 겁니다. 실제 1993년 10월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미군 블랙 호크(UH-60) 헬기가 피격돼 조종사가 생포됐고, 특수부대원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소말리아인들이 미군 주검을 끌고 다니는 모습이 퍼지자 미국 시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듬해 미군은 소말리아에서 철수했습니다. 영화 '블랙호크 다운'이 소말리아에서 전투를 벌였던 미군의 실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가뜩이나 이란의 끈질긴 저항에 애를 먹던 미국이 조종사 구출에 실패했다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힘든 상황으로 몰렸을 겁니다. 더구나 국내 반전 여론이 강해지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반대로 이란 입장에선 최고의 시나리오였습니다.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버틴 것도 모자라 조종사까지 생포했다면 이 정도의 자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종사를 앞세워 대대적으로 홍보했을 겁니다. 그런 까닭에 이란은 현상금까지 내걸고 추격했지만 끝내 실패했습니다. 더구나 이란은 다른 곳도 아닌 자국 영토 안에서 생포에 실패해 체면을 구겼습니다. 수백 명의 미군 특수부대, 최첨단 군용기와 헬리콥터가 자국을 휘젓고 다녀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무기체계장교 구출은 미국 입장에선 가장 대담한 구조작전으로 남게 됐고, 이란 입장에선 안방을 내준 뼈아픈 작전이 됐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들어가겠습니다. 미국도 구출엔 성공했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엔 찜찜함이 오래 남을 겁니다. 이번에 격추된 F-15E 전투기는 공중전에선 격추된 적 없는 '무패'의 항공기로 유명합니다. 오랜 기간 미 공군의 주력 기종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동안 '하늘의 제왕'으로 군림해 왔는데, 이란 방공망에 의해 개전 후 첫 격추란 불명예를 안게 됐습니다. 그 불명예는 F-15E 전투기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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