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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법', 이거아나?

by 연산동 이자까야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소개할 시사상식 용어를 '벤틀리법'으로 정했어요. 라노는 벤틀리 하면 영국의 자동차밖에 생각나지 않는데요. 그래서 '자동차에 관련된 법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라노의 생각은 반쯤 맞았어요. 벤틀리법은 차 사고와 관련된 법이거든요. 벤틀리법이 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라노가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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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노 구독자 중 성인이신 분들은 술을 마셨을 때의 느낌을 다 아실 거예요. 어질어질하고 땅이 울렁거린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감각도 무뎌지고 사고의 폭도 짧아집니다. 한 마디로 정상적이진 않다는 뜻이죠. 그렇기 때문에 술을 마신 뒤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요. 라노는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발생한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4만 7849건이고 이 중 788명이 사망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산에서 발생한 음주운전은 2021년 기준 658건으로 전체 교통사고(1만 2133건)의 5.4%에 달했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교통사고 유자녀 및 보호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통사고로 사망한 가장이 아버지인 경우는 89.2%, 어머니인 경우는 8.9%, 부모 모두 사망한 경우는 1.9%로 밝혀졌습니다.


남겨진 자녀의 나이는 만 3세 미만 24.2%, 만 3~7세 35.7%, 만 7세 이상 40.1%로 집계됐습니다. 보험회사가 이들에게 지급한 위자료는 평균 8037만 원이며, 33.4개월 이내에 전액 소비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음주운전은 한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죠. 현행법상 음주운전 사망사고 시 피해자 유자녀를 지원하는 법률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른 지원 정책이 유일합니다. 이마저도 피해자 가족이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일 때만 가능하죠.


음주운전 가해자는 가정을 망쳤지만 법적인 처벌 이외의 다른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남겨진 음주운전 피해자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 마땅해 보이는데요.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국회의원은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음주운전 교통사고 사망 시 피해자 자녀의 양육비를 가해자가 책임지도록 하는 일명 '벤틀리법'이죠. 벤틀리법은 가해자가 음주운전으로 미성년자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양육비 책임을 지도록 채무자의 범위를 확대했습니다. 또, 실형을 선고받아 인신이 구속돼 지급이 어려우면 형 집행 종료 6개월 이내에 양육비 납부를 시작하도록 규정했죠.


벤틀리법은 미국에서 제정된 법입니다. 미국 테네시주는 지난 1월 1일부터 개정안과 같은 내용의 '이든, 헤일리, 벤틀리(Ethan’s, Hailey’s, and Bentley’s law)법'이 시행 중이고, 그 외 20여 개 주도 법률을 심사하고 있습니다. 2021년 음주운전 사고로 아들 내외와 4개월 된 손주를 잃고 남겨진 3세, 5세 손주를 키우게 된 미주라주의 세실리아 윌리엄스의 청원으로 미국 전역에서 '벤틀리법' 제정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벤틀리는 5세 손주의 이름이죠. 그 이후 벤틀리법을 가장 먼저 제정한 테네시주는 음주운전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한 테네시주 경찰의 두 자녀 '이든과 헤일리'를 벤틀리법 이름에 반영하면서 '이든, 헤일리, 벤틀리법'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테네시주는 법률에 따라 음주운전으로 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를 사망하게 했을 때 자녀가 18세에 이르기까지 양육비를 지급해야 합니다. 양육비 연체금이 남아있다면 유자녀 연령이 18세에 도달했을지라도 양육비 지급 의무가 지속됩니다.


음주운전은 '별로 취하지도 않았으니 운전해서 갈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동기가 가벼운 것에 비해 결과는 무겁기 그지없죠. 술에 취해 운전대를 잡기 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도록 처벌이 무거워야 합니다. 법 제정을 통해 가해자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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