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있나요?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보통은 보듬어주고, 위해주고, 애지중지 여기고 싶을 거예요. 짓밟고, 망가뜨리고, 함부로 대하지 않겠죠. 그래서 라노는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요. 하지만 아직도 사랑하기 때문에 때렸다고 변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지난달 26일 오전 7시17분 서울 금천구 시흥동 지하상가 주차장에서 피해자 A 씨가 전 남자친구 B 씨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A 씨는 이별 통보를 받은 뒤에도 다시 만나자고 강요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저지른 B 씨를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 조사를 먼저 끝내고 나와 있던 B 씨는 뒤이어 나온 A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습니다. 또 다른 데이트폭력 사건도 있었는데요.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에서 한 남성이 헤어진 여성을 폭행·감금했고, 지난달 28일에는 경기 안산시에서 한 남성이 만나던 여성을 살해했습니다.
데이트폭력 범죄는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2017년 1만4136건, 2018년 1만8671건, 2019년 1만9940건, 2020년 1만8945건, 2021년 9월 4만1335건, 2022년 9월 5만2767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또 2017년 1만303건이었던 데이트폭력 입건 건수는 2020년까지 감소하는 듯했으나 2021년 1만554건으로 증가했고, 2022년 9월 전년 동기 대비 38.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데이트폭력은 데이트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정서·경제·성·신체적 폭력을 말합니다. 여기서 데이트관계란 좁게는 데이트 또는 연애를 목적으로 만나고 있거나 만난 적 있는 관계, 넓게는 소개팅 채팅 등을 통해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만나는 관계를 뜻합니다. 사귀는 것은 아니지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 즉 '썸 타는 관계'까지 포함하죠. 헤어지자는 상대방의 요청을 거부하거나, 이별했음에도 스토킹할 때가 많은데 이 역시 데이트폭력에 속합니다.
데이트폭력은 친밀한 관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폭력행위입니다. 데이트폭력은 단 한 번의 폭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폭력이 지속되고 주기적으로 발생할 때가 많죠. 폭력 빈도와 강도가 점차 강해지는 양상도 보입니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의 '데이트폭력 실태조사(2018)' 결과 데이트관계에서 연인에게 최고 한 번 이상 폭력을 경험한 사례는 54.9%로 나타났습니다.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오랜 기간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큽니다. 때리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해자의 반복적 행동은 사랑하기 때문에 때리고 집착하는 것이라고 믿게 만듭니다. 그래서 피해자는 폭력행위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폭력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기 쉽습니다.
반복되는 데이트폭력 사건에도 우리나라는 아직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법이 없습니다. 데이트폭력이 일어나도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처벌법 등을 적용하죠.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피해자를 위한 별도의 보호 조처를 위해서라도 데이트폭력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교제 중이거나 교제했던 상대가 저지른 폭력을 가정폭력으로 규정하고, 접근 금지 등 피해자 보호 제도를 적용하는 내용의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두 차례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이 되지 않거나 논의 후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 "현행 가정폭력처벌법 적용 대상을 데이트폭력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후 '제20대 대통령선거 국민의힘 정책공약집'에도 같은 내용을 담았죠. 윤 대통령은 데이트폭력을 비롯한 권력형성범죄·디지털성범죄·가정폭력·스토킹범죄를 '5대 폭력 범죄'로 규정하고 피해자 지원 대책을 약속했지만 관련 법 개정 논의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전문가는 데이트폭력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폭력의 수위보다는 지속적인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를 엄중 처벌하는 법안보다는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관계자는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가 우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송혜미 변호사는 데이트폭력은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하는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하기보다는, '데이트폭력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죠. 데이트폭력 특성상 피해자가 위축돼 있고, 가해자와 만나고 싶지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수 없는 상태가 많지만 현재는 피해자가 경찰에 적극적으로 보호 조처를 원한다고 이야기해야지 분리가 됩니다. 피해자를 위해서는 특별법을 제정해 전문가 입회 하에 분리 여부를 결정하는 등 피해자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송 변호사는 "데이트폭력 사건을 일반 형법으로 다루면 처벌 수위가 세지 않고,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스토킹처벌법을 적용하기에 애매한 경우가 많다"며 "데이트폭력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