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얼마 전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왔어요. 영화관만의 아늑함과 큰 화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가 좋아 영화관을 자주 찾는 편인데요. 라노는 접근성이 좋고, 적당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영화야말로 가장 대중적인 취미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최근 어떤 소식을 접한 뒤 누군가에겐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았죠.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얻은 가수 강원래 씨가 영화관을 찾았다가 휠체어를 탄 채 혼자 돌아 나와야 했던 사연을 SNS에 공개했습니다. 강 씨가 예매한 극장이 계단 때문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상영관이었기 때문인데요. 당시 강 씨가 찾은 상영관은 일반관보다 가격이 비싼 특별관(컴포트관)으로 출입구에 경사로 없이 계단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라노는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수없이 영화관을 드나들었지만, 그동안 휠체어를 타고 온 관람객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요.
영화관 내에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좌석을 설치하는 규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은 제4조와 시행령 등에서 '공연장, 집회장, 관람장, 도서관 등의 전체 관람석이나 열람석 수의 1% 이상을 장애인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위치로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3 전국 멀티플렉스 3사 장애인 관람석 설치 현황'을 보면 3사 모두 기준을 충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CGV 1.4% ▷롯데시네마 1.6% ▷메가박스 1.4% 등의 비율로 장애인석을 설치했죠.
그런데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영화관을 이용하는 데 불편을 겪는 건 시행령에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석 설치 기준이 '개별 상영관'의 1% 이상이 아닌, '전체 상영관'의 1% 이상으로 설정돼 있다 보니 아예 장애인석이 없는 상영관이 생겨났습니다. 여러 개의 상영관 가운데 몇몇 상영관에만 장애인석을 만들어 1%의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1%에 불과한 장애인석은 좌석 선택에도 제한을 받습니다. 영화관 내에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장애인석을 설치해놓긴 했지만 모든 상영관에 장애인석이 마련돼 있는 것도 아니고, 있더라도 1~2석으로 극소수입니다. 장애인등편의법에는 스크린을 기준으로 중간 줄 또는 제일 뒷 줄, 거리가 충분할 경우 제일 앞 줄에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돼있음에도 대부분의 장애인석은 상대적으로 관람이 불편한 가장 앞이나 가장 뒤에 자리가 배치돼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제일 앞 줄에 장애인석을 설치한 영화관은 ▷CGV 1894석(70.8%) ▷롯데시네마 1670석(71.6%) ▷메가박스 1063석(75.5%)으로 조사됐습니다. 제일 뒷 줄에 장애인석을 설치한 상영관은 ▷CGV 734석(27.4%) ▷롯데시네마 591석(25.3%) ▷메가박스 325석(23.0%)으로 밝혀졌습니다. 그에 비해 중간 줄에 장애인석이 설치된 상영관은 ▷CGV 46석(1.7%) ▷롯데시네마 71석(3.0%) ▷메가박스 20석(1.4%)에 불과합니다.
경사로나 입퇴장로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 등을 고려하면 맨 앞자리나 맨 뒷자리에 장애인석을 마련할 수밖에 없지만, 영화관 대부분이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부족한 실정이라 상영관 선택과 좌석 선택조차 할 수 없어 이들의 문화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논란이 지속되자 국회도 강 씨 사례를 언급하며 개별 상영관의 1% 이상을 장애인석으로 지정하도록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정부와 함께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 이 부분을 개선해 상식적인 세상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예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장애가 있는 관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좌석에서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없는 상황을 늘 마주합니다. 장애인석에 더해 영화관 내 장애인 접근성 향상을 위한 구조 변경이 이뤄지도록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