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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산동 이자까야 Jun 10. 2024

헛웃음만 나오는 저출생 정책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1968년, 미국의 동물행동학자 존 칼훈은 먹이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천적이 없는 환경에 쥐 4쌍을 투입해 '쥐 유토피아' 실험을 진행합니다. 첫 300일 동안 쥐들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600일이 지나자 증가 속도가 늦춰졌고, 2200마리를 기점으로 개체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죠. 쥐들 사이에 계급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힘센 쥐는 먹이와 넓은 공간을 모두 차지했고, 약한 쥐는 먹이와 지낼 공간을 빼앗겼습니다. 약한 쥐들끼리 부족한 먹이를 가지고 싸우고 좁은 공간에서 우글우글 모여 사는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이 이어지자 쥐들은 번식을 중단했고 양육 포기, 새끼 학대, 부랑자 발생 등 이상행동을 보였습니다. 개체 수가 감소해 과도한 경쟁을 하지 않게 된 후에도 쥐들은 여전히 번식을 하지 않았죠. 60년 전 실험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야기한 인구 소멸을 예견한 셈입니다.

한국은 현재 쥐 유토피아 실험의 어느 지점쯤을 지나고 있는 걸까. 한국의 올해 1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대로 역대 최저를 또 갱신했습니다. 저출생 고령화의 표본인 부산은 0.6명대로 추락했죠. 이대로는 비수도권은 물론이고 국가 자체가 사라질 위기입니다. 저출생 위기가 심화되자 정치권에서는 저출생 관련 정책들을 내놓았습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사회 구조부터 바꿔나가야 하지만, 당장의 정책 제안에 급급하다 보니 황당한 정책을 쏟아내 시민들의 비난을 샀습니다. 


지난 3일 국책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의 재정포럼에 담긴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 보고서를 보면 "남성의 발달 정도가 여성의 발달 정도보다 느리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령에 있어 여성들을 1년 조기 입학시키는 것도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황당한 분석이 담겼습니다. 보고서는 여성을 1년 조기 입학시키는 것이 어떻게 결혼 적령기 남녀 간의 교제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유아 발달 특성을 무시하고, 성차별적이란 비판이 일자 조세연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원의 공식 의견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황당한 정책 제안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서울시가 지난달 27일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고 정관·난관 복원 수술비 지원 사업에 총 1억 원을 반영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수술비를 지원하는 게 근본적인 저출생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죠. 서울시는 "시술비를 지원해 임신과 출산을 희망하는 가정의 경제점 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으나 지나치게 '생식기능 지원 사업'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 김용호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괄약근을 조이는 케겔 운동과 체조 동작을 조합한 '국민 댄조 운동'을 시민건강 출생 장려라는 취지로 홍보한 것 역시 논란이 됐습니다. 김 의원은 "자궁이 건강하고 몸도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해지다 보면 출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조건이 될 수 있다. 결혼 후 아기를 가질 때 더 쉽게 임신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24일 시작된 '국민 댄조' 행사는 논란이 거세지자 지난 3일 행사를 중단했습니다. 


"한국의 사회문화적인 구조 속에서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의 결과가 바로 저출생입니다. 그런데 현재 논란이 된 정책들은 저출생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구조적인 원인 분석이 전혀 되지 않은, 미시적이고 단기적인 정책들이에요. 저출생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중장기적인 저출생 대책들을 설정해야 해요. 가정·일터에서의 성별 불평등과 같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성차별을 해소해야 해결될 것입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임선희 조직국장은 결혼·출산·육아라는 전통적인 생애 주기로 여성들의 삶을 재단하고, 여성의 다양한 생애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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