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지금,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유산이 생겨났습니다. 주택이나 토지 예금 귀금속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속 연락처와 사진·영상, 주고받은 문자·이메일, SNS 계정 등 데이터도 유산이 된 것인데요. 개인이 죽기 전 남겨놓은 디지털 흔적, 이른바 '디지털 유산'이라는 개념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유산이라는 개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 유족이 사망자의 카카오톡 등에 있는 연락처를 공개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고인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확보하지 못해 부고를 전달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사망자의 개인정보라도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해 유가족에게 제공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정부가 나서 협의를 진행한 끝에 '이름을 뺀 전화번호'만 유족에게 제공하기로 했죠.
세월호·이태원·제주항공 참사 등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디지털 유산 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정작 논의는 지지부진합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살아있는 개인'에 대한 정보만 보호 대상으로 규정해, 사망자의 데이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죠. 아직 디지털 유산의 종류와 범위는 물론 상속자와 자격, 유족 간 상속 분쟁 등에 관한 기준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런 이유로 몇몇 IT 기업은 자체 규정을 통해 디지털 유산을 관리하는데요. 별도 규정이 없는 대부분 회사는 유족이 원하면 사망자의 계정 폐쇄 요구 정도만 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기업도 개인정보 보호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죠. 반면 구글 메타 애플 등 해외 기업들은 디지털 유산에 접근할 수 있는 계정을 이용자가 사전에 지정하는 서비스를 발 빠르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에 디지털 유산 상속자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상속자를 사전에 지정해 사후 계정에 접근할 권리를 가질 사람을 지정하자는 것인데요. 남겨진 가족에게 디지털 유산을 상속해 '기억되고 싶은' 사람은 사전에 "가족에게 디지털 유산을 상속하겠다"고 밝히면 됩니다. 가족에게도 디지털 자산을 공개하지 않고 '잊히고 싶은' 사람은 "아무에게도 디지털 유산을 상속하지 않겠다"고 전달하면 되죠.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디지털 유산 상속자 제도를 도입하면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디지털 유산이 상속되거나, 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개인정보 일부가 유족에게 전달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만약 법이 시행되면 기업은 상속자가 고인의 개인정보나 사생활을 유출하거나 침해하지 않도록 기술적 조치를 미리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은 고인이 거부한다면 아무리 가족이 원한다고 해도 디지털 유산을 전달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국가는 고인의 디지털 유산을 자동으로 검색해 주는 기능을 기업에게 추가하게 해 가족에게 제공하도록 요구할 필요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