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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습격당했다

by 연산동 이자까야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서부지법 사태'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20일,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자 신문이 '습격' '공격' '짓밟힌' '유린' 등 과격하고 폭력적인 언어로 가득 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을 습격해 폭력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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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습격당한 초유의 '사법부 테러'는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에서 시작됩니다. '12·3 비상계엄' 47일 만인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결국 구속됐습니다.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는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죠. 윤 대통령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내란 혐의를 반박했지만 법원은 구속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는데요. 이때 서부지법 인근에는 윤 대통령 지지자와 보수 성향 유튜버 등 수만 명의 인파가 운집해 있었습니다.


지난 19일 새벽 차 부장판사는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결정 직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영장 실물과 수사 기록을 인계하도록 직원에게 지시하고 퇴근합니다. 새벽 2시53분 공수처가 이를 수령했고, 2시59분 영장 발부 사실이 언론에 공개됩니다. 서부지법 앞에 운집한 시위대는 이 소식을 듣고 격분하는데요. 3시7분 시위대는 경찰 저지선을 뚫고 법원 경내에 침입했고, 3시21분 경찰에게서 빼앗은 방패와 플라스틱 의자를 휘두르며 유리창을 깨고 청사 내부로 진입합니다. 3시32분 진압을 위해 경찰 기동대가 법원에 들어갔고, 6시8분 상황이 정리됩니다.


침입한 시위대는 "판사X 나와!" "내란 법원이다" "죽여버리겠다"고 외치며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아다녔습니다. CCTV와 연결된 법원 내부 서버를 고장 내거나, 컴퓨터에 물을 붓는 등 각종 기물을 파손했죠. 난동은 법원 7층 영장판사실을 중심으로 일어났는데요. 영장 발부를 담당한 판사를 표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7층 판사실 중 유독 영장판사 방만 의도적으로 파손되고 그 안에 들어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런 부분을 알고 오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차 부장판사 사무실은 영장판사와 다른 층에 있어 시위대가 침입하지 못했습니다.


'폭동' 과정에서 부상자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시민과 시위대 41명이 다쳐 이 중 12명이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시위대를 저지하던 경찰관 51명도 부상을 입었는데요. 이 가운데 7명은 전치 3주 이상 중상자로 파악됩니다. 경찰은 서부지법을 포함해 헌법재판소 등에서 난동을 부린 90명을 체포했습니다. 서부지법은 이 가운데 58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죠.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법원에 난입한 이들을 두고 "끝까지 추적해 구속 등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건은 사실상 윤 대통령이 부추긴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지지층에게 '함께 끝까지 싸우자'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내놨습니다. 1차 체포영장이 발부된 다음 날인 지난 1일에는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내용의 새해 메시지를 냈습니다. 15일 체포 당일에는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고 주장했죠. 구금된 17일에는 "나와 나라를 위해 힘을 모아주고 계신다고 들었다" 등의 옥중 편지를 공개합니다. 윤 대통령이 결집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잇따라 내놨고, 이에 지지층이 흥분하면서 과격 행동을 벌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겁니다.


서부지법 사태를 두고 사법부와 검찰, 경찰은 일제히 법치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중대한 범죄로 규정했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훼손한 것이 이번 사태"라고 언급한 뒤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 반드시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말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국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사법 체계를 파괴하고 민주공화국의 기본적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죠. 윤 대통령은 변호인단을 통해 "분노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해 달라"고 당부했지만, 이미 늦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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