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년 전 선사인이 남긴 고래 그림

by 연산동 이자까야

굽이친 대곡천을 따라 병풍처럼 펼쳐진 높이 5m 바위. 이곳에는 선사인들이 벽면을 깎아 새긴 다양한 그림이 있습니다.


기원전 5500~3000년 새겨진 암각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형상은 동물, 그중에서도 고래입니다. 돌고래 향유고래 큰 고래 북방 긴 수염고래 범고래 귀신고래 혹등고래 등 최소 7종류가 등장하는데요. 312점의 그림 중 고래만 50마리 이상 확인됩니다.


새끼를 업었거나 뱃속에 품은 고래 그림도 볼 수 있고요. 작살을 던지고 사냥한 고래를 해체하는 모습까지 고래잡이의 전 과정을 정교하게 묘사했죠. 1971년 발견된 인류 최초의 포경 그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입니다.

반구대.jpeg 지난 13일 울산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전망대에서 어린이 방문객이 망원경으로 암각화를 관찰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반구대 암각화에서 계곡을 따라 2㎞가량 떨어진 또 다른 그림이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에 앞서 1970년 먼저 존재가 알려진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서로 다른 시대가 공존하는 희귀한 유적입니다.


신석기시대 사냥 그림부터 청동기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마름모 원형 등의 추상적 문양이 인상적입니다. 또 신라 법흥왕(재위 514~540) 시기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문자까지 남아 있어 한반도의 역사를 오롯이 엿볼 수 있죠.


한국의 17번째 세계유산


지난 12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제47차 회의를 열고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세계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식 명칭은 '반구천의 암각화(Petroglyphs along the Bangucheon Stream)'인데요. 2010년 잠정 목록에 오른 지 15년 만에 세계유산으로서 빛을 보게 됐습니다.


세계유산 후보를 사전 심사하는 자문 기구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지난 5월 반구천 암각화의 등재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평가 결과를 토대로 "'반구천의 암각화'는 선사시대부터 약 6000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고요.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준다"며 "선사인의 창의성으로 풀어낸 걸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반구천 암각화가 세계유산 목록에 새로 이름을 올리면서 우리나라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이후 총 17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암각화 수난시대


그런데 반구대 암각화는 수십 년간 물에 잠겨 훼손되는 수난의 역사가 반복됐습니다. 1965년 대곡천 하류에 사연댐이 건설되면서 수위가 53m를 넘으면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데요. 반구대 암각화는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40일 넘게 물에 잠겨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렇다 보니 형상이 뚜렷했던 고래 호랑이 등 그림이 물에 침식돼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닳았습니다. 현재까지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수십 년 동안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죠.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암각화 훼손을 막기 위해 댐 수위 조절, 임시 제방·물막이 설치 등 여러 안이 나왔으나 쉽사리 해결책을 찾지 못했죠. 세계유산위원회가 신규 유산 등재를 결정하면서 "사연댐 공사 진척 사항을 보고하고 주요 개발계획은 알려야 한다"고 우리 정부에 권고한 이유입니다.


정부는 암각화의 보존을 위해 사연댐에 수문 3개를 설치해 수위를 조절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문제는 수위가 낮아지면 울산시는 하루 4만9000t의 식수원이 부족해질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인데요. 대체 식수원은 대구·경북 등 인접 지역에서 구해야 하는데, 식수를 주고받는 일은 지역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난제라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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