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

by 미국의 할배

우리 집의 세수수건은 대략 50개쯤 된다. 이 수건들을 사용하고 모아 두었다가, 빨아 놓은 수건이 몇 개 남지 않았을 때 한꺼번에 빨아서 개어 놓는다. 나는 한 번도 이 수건들을 빨아 본 적은 없다. 우리가 이렇게 수건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세탁을 하게 된 이유는 세탁기에 수건들만 따로 세탁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세탁기를 사용할 줄도, 사용해 본적도 없다.

아내는 이 세탁한 수건들을 건조기에 말린 후 방에 펼쳐 놓았다가, 열기가 식으면 예쁘게 개어 사물함에 보관한다. 나는 아주 가끔 이렇게 방에 펼쳐진 수건들이 눈에 띄면 하나씩 개어 사물함에 넣어 놓을 때가 있다. 그런데 오늘 낮에 방에 잠깐 들어갔더니 수건들이 방에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그 수건들을 보관하기 좋게 하나씩 개다가 1995년에 만들어진 어느 분의 고희 기념 수건을 발견하였다. 그러니까 31년이 지난 수건이었던 것이다. 왜 이 오래된 수건이 아직까지 우리 집에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직도 더 사용해도 될 만큼 헤진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된 수건들이 우리 집에 얼마나 더 있나 궁금하여 글자가 새겨져 있는 수건들을 추려 보니 8개 정도가 더 있었다. 글들을 읽어 보니 무슨 기념이나 광고 문구가 새겨진 수건들과 각종 모임에 참석했던 기념 수건도 있었다. 또 내가 2008년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한 기념 수건도 있었다. 그리고 2010년에 고희를 맞이하신 분의 감사 수건이 두 개가 있었고, 연도가 새겨지지 않은 광고 수건이 세 개 더 있었는데, 조금 낡은 것으로 보아 이 수건들도 제법 많은 세월 동안 우리의 얼굴을 닦는 데 사용된 듯했다. 이 이외의 나머지 수건들은 아무 표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돈을 주고 구입한 것으로 보이며, 이런 수건들은 비교적 상태가 괜찮았다.

지금은 이렇게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건들을 집에 쌓아 두고 한 번만 사용하고 세탁을 하지만, 내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수건이 그리 흔하지 않아서 가족 모두가 공용으로 여러 번 사용한 뒤 세탁을 했기 때문에 때가 잔뜩 끼어 있거나 때로는 수건에서 땀 냄새가 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농사일을 하고 제대로 씻지도 않고 여러 사람이 사용을 했고, 수건도 몇 개 되지 않았으니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당시 집에 수건이 새로 생기는 경우는 주로 아버지께서 장례식에 참석하셔서 상여를 메시고 그 수고의 대가로 흰 고무신과 함께 받아 오시거나, 환갑잔치에 참석하셔서 감사 기념으로 받아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런 기회가 없을 때에는 새로 구입하기도 했겠지만, 대부분은 부족해도 없는 대로 그냥 지내다가 이렇게 기념으로 받아오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때의 수건은 장사를 시작하는 사장님들이 가게를 홍보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동창회나 동호회 같은 행사 참가 기념이나 환갑이나 고희 또는 결혼과 같은 대소사에 참가 감사 답례품으로 제공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이런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뿐더러, 설사 있다 하더라도 수건을 기념으로 주지 않으니 최근 연도가 새겨진 수건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방안에 펼쳐진 수건을 개다가 수건에 새겨진 기념의 기록들을 보면서, 어릴 적 수건이 부족해서 때와 냄새에 찌든 수건들을 사용했던 추억에 잠시 젖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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