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여자가,혼자 산다는 것

세 번째 이야기 : 신의 셈엔 오차가 없다.

by 신유아

신의 셈에 오차가 없다는 믿음은, 쉽게 생기지 않았다.


믿는다고 믿었는데, 의심했었나보다.


그래서 그 믿음이 확인되는 순간들이.. 그저 순간일지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방금 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평소 시청률 높다고 소문난 드라마만 보던 내가, 드라마에서 (현실이 줄 수 없는) '환상적인' 대리만족만 찾던 내가, 그래서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일수록 멀리해 왔던 내가, 그 잔잔하다 못해 밋밋한 현실 로맨스물이 내게 준 여운을 붙들어 두려고, 지금 몽골몽골하니 맺힌 이 느낌들이 시간을 타고 흘러가버리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끝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세상을 천국 혹은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내 자신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건 모든 이들이 다 마찬가지고, 그 천국에서 느끼는 행복의 크기도, 지옥에서 느끼는 고통의 무게도 다 엇비슷하다고 믿는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통해 얻어낸 값진 깨달음이든, 내 스스로가 발명한 유치한 자기 위로든, 상관없다. 그 정도는 디펜스될 인생같으니까.


하지만 그 믿음이 맞구나. 혹은 맞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은, 행복했다.

내 믿음이 허약했나? 근데, 그럼 좀 어때? 싶기도 하고..


그 드라마에서는, 재벌도, 천재도, 남녀노소, 빈부격차 다 불문하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평등하게...


불행했다. 그것도 매우 설득력있게.


극적인 반전도,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화려한 반전이나 성공도 끝까지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남의 불행을 보면서 역시 신의 셈엔 오차가 없구나..모든 사람들에겐 다 비슷한 인생의 무게가 있구나..그래서 내가 이렇게 사는 것도, 공정한 거구나..를 느끼는 것이, 이렇게 느낄 수 있는 내가,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오만일까?


교수만 되면, 더는 신에게 어떤 소원도 빌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물론, 이미 오래 전에 깼고.

실은 맹세를 하던 그 순간 이미 알고 있었다. 지킬 수 없는 맹세란 걸. 그런데도 했다. 그만큼 간절했다.


그 이후..그만큼 간절한 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난 매일같이 뭔가를 신에게 빌고, 왜 안 되는지 의문도 품고, 원망도 하고 전쟁도 하며, 늘 비슷한 사이즈의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살고 있다.


신은 내가 빈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셨다. 지금은 한 가지를 안 들어주고 계시지만,

어쩌면,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확실히, 신은 계산이 다..있으실 거다. 신이 계산을 잘못하지 않는단 건, 안지 쫌 됐다. 나따위는 게임도 안 될 정도로, 신은 계산에 밝으셨다. 그래서 다행이고.


천국을 만들기 위해 지옥을 사는 삶..은 대학만 잘 가면, 좋은 직장만 가지면, 끝나는 줄 알았다. 그 다음엔,

계속 천국일줄 알았다.


하지만 이젠, 그 천국과 지옥이 내가 만든 것이란 걸, 그 지옥 속에 무수한 천국이 있었단 걸, 난 천국에 있으면서도 또 무슨 수를 내서든 그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것이란 걸, 그래서 늘 지옥에서 살 수밖에 없으리란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지옥을 살 거다. 천국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순간순간 내가 만든 천국을 맛보며, 또 다른 지옥을 만들어 갈 거다. 그래도..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천국의 크기와 지옥의 무게가 다 비슷하단 것을 확인한 이 순간 만큼은,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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