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여자가 혼자 산다는 것

두 번째 이야기 : 대한민국 0.0001%

by 신유아

난 명절이 좋다.

대한민국에 사는 30대 이상 여성 거의 99.9999..%가 싫어하는 날이지만, 난 좋다. 왜?


솔직히 별 대단한 이유는 아닌데..


일단. 명절 보너스가 나오고,

해야할 일이든 하고 싶은 일이든 둘 중 하나에 모~~든 시간을 써도 되는, 시간 부~~자가 될 수 있는 날이니까.

교통상황도, 심지어 며칠간 '내일의 날씨'조차 검색할 필요가 없다. 신경쓸 일 자체가 없단 얘기지.


이 날은 그 소란하던 핸드폰도 묵언수행에 들어간다. 대외용으로 뿌려대는 단체 메시지 외에는 거의 미동도 않는다.


나홀로 여유작작 컴퓨터 앞에 앉아,

은은한 다향을 맡으며 (미리 완벽하게 세팅해 둔) 마트제 송편을 우아하게 집어먹을 수도 있고,

심지어 맘놓고 육신이 아파도 된다. 최소 3일 정돈 약 퍼먹고 드러누울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니까.


한 마디로, 나야말로 진정한 대한민국 0.001%라는 '부심'이, 찰랑~찰랑~

메마른 우물같던 내 마음에 흘러넘치는, 그런 날인 거지. 후훗.


모두가 어딘가를 갈 걱정, 올 걱정, 명절 음식을 만들 걱정, 먹을 걱정, 그걸 처리할 걱정같은, 온갖 쓰잘데기 없는 잡념에 시달릴 때,

오로지 나홀로 아~~무 걱정 한줌 없이 완벽한 평온을 벗하며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날.

그날이 바로 내 조국 대한민국의 명.절. 인 거다.

혼자 기를 쓰며 인생 해결해보려 노력한 내인생에 주어진, 진정한 보.상.


뿐인가?


미뤄둔 일거리도 상당히 해치울 수 있다. 한동안 날 짓눌러왔던 삶의 무게를 다소나마 덜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단 뜻이지.


어때? 멋지지 않아?


여기서 살짝 반전은,

어린 시절 난 명절을 싫어했다는 거다. 다른 국경일?은 다 빼고, 딱 추석과 설날 당일!! 이틀만.


휴일날 종-일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한데,

공짜로 혹은 (자판기 커피값) 200원으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인 시립 도서관마저도

그날은 문을 닫았거든.


그래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 때마다 난 돌아오는 첫번째 일요일 날 밝은 시간대에 버스를 타고 일단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매의 눈'으로, 만화방을 찾았지. 운이 좋으면 2개 이상(?)이 눈에 띄기도 했고, 딱- 1개뿐일 때도 있었는데, (어쨌든 발견할 때까지 버스를 바꿔 타며 찾았으니까, 한 곳도 못 찾을 순 없었다) 물색이 끝난 뒤엔 그 만화방들을 모두 돌며 제법 간곡하면서도 진지한 눈빛으로


"설날 당일에도 문 열어요?"


라고 물었다. 긍정의 대답이 돌아오면, 아싸! 그 다음 질문은 당연히..


"몇 시부터 몇 시까지요?" 였고.


신이 날 진정 사랑한 탓인지, 아니면 그 시절 만화방 사장님들의 인심이 좋았던 덕인지, 명절 당일에도 문을 여는 만화방은 희한하게도 늘 있었다. 워라벨이 없었던 그 시절이 따듯했던 이유고, 명절을 싫어했던 내가 명절을 좋아하게 된 사연이다.


(근데 왜 추석날 여는지는 안 물었냐고? 설날 당일에 열면 추석에도 열 확률이 아-주 높으니까. 당연한 얘길..)


아참, 내가 명절 당일에 집에 있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얘기 안 하는 게 낫겠다. 비밀로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만약 이 글을 읽는 분이 계시다면) 읽어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안 그래도 번잡한 마음에 무익한 불쾌함, 혹은 충격, 아니면 애석함 등등의 감정을 얹어드리기 싫어서다. 부디 혜량하여 주시길.


그리고 사실 난, 맘씨고운 누가 들으면 눈물이라도 글썽일 법한 그런 사연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남들이 상상하는 만큼 힘들거나 불행하진 않았다. 종일 '어쩔 수 없이' 만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좋았다.


그리하여, 나의 명절은 늘 평온과 재미로 가득찼고,

그 만화의 스토리들이 나에게 선물한 각성은 날 평생 먹여살릴 자산이 되어 주었다.

만화의 내용이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게 많아서, 자연스럽게 역사를 좋아하게.. 아니 빠져들게 됐거든.


시간이 갈수록, 난 신께서 날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것을 확신한다.

(최종적으로) 내게 도움이 안 되는 건 단. 한 개도 주지 않으시니. 그게 뭐든.


하지만 시간 만큼은..늘 충분하게 주신다. 그리고 난 그 시간으로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잠깐? 쉬는 시간이다)


물론, 이상할 때도 있다. 신께서 날 왜 이렇게 챙겨주시지? 막판에 뭔가 반전이 기다리는 건??? 음..


신을 의심하진 말자. 어차피 못 이긴다. 반전이 있으면 뭐? 당하는 수밖에 없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반전을 행운으로 해석해서, 신께서도 반전을 경험하게 해드리는 방법뿐이다.

나름 멋진 복수인 건가? 하지만 신께선 그걸 미약하나마 (자신이 베푸신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 여기실지도.


여하튼. 이 두서없고 의미없는, 게다가 기나긴 독백 끝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난 명절을 즐기는 여자다. 그래서 난..


대한민국 0.0001%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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