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여자가 혼자 산다는 것

첫번째 이야기: 시름겨운 시간은 있어도, 서러웠던 순간은 없다.

by 신유아

혼자살면, 아플 때 가장 서럽다고들 한다.

단언컨대, 미신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겠지.

이유를 퍽 구체적으로 대는 경우도 있다.

죽 끓여줄 사람이 없어서, 약 사다줄 사람이 없어서, 기타 등등.


말인지 막걸린지.


혼자서 약도 못 사러 갈 정도면 입원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죽이든 약이든 병원에서 알아서 해주고 있을 테고.

만약, 병원비만 있다면.


그 정도로 아픈 게 아닐 땐, 혼자인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내 편할 대로 먹고, 입고, 잘 수 있어서.

추한 꼴이 연출될 수도 있는데, 아무도 볼 사람이 없어서.


적어도 내 경험상, 아플 때 드는 생각은 절대 '서럽다'는 낭만가득한 감상따위가 아니었다.


출근을 못하면 어쩌지?


였지.


교사로 재직할 당시, 내가 갑자기 아프다고 결근을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에게는 수업 진도에 차질이 생기고, 다른 선생님들과 수업도 교환해야 한다. 그 교환도 내가 직접 할 수 없고, 수업계 담당 교사가 급작스럽게 대신해주어야 한다. 나중에 병이 나아 학교에 나갔을 때, 하루에 수업을 5시간 이상 해야할 수도 있고, 그러면 몸에 무리가 와서 다시 아파질 수도 있다.


만약 꽤 오래 쉬어야할 정도로 아프다면? 최악의 경우 직장을 계속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면?

일을 해야 병원비든 약값이든 나올 텐데..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정답을 짐작하셨을 거다.


맞다. 몸이 심하게 아플 때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뻔하고 구차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혹은 독자를 끌려고 황당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리고 분명히)


'약값' 걱정이었다. 내겐 날 대신해서 약값과 병원비를 벌어다 줄 인간이 단. 한. 사람도 없으니까.


"약도 주시고, 주사도 놔주시면 안 되요?"


병원에서 약만 먹어도 된다고 하는데도, 매번 주사를 놔달라고 했다.


나는 '빨리'나아야 했으니까. 앓고 있을 시간이 없었으니까.


간호사분이 내가 주사를 참 잘 맞는다고 했다. 아픈 주사도 정말 잘 참는다고.

나름 대단하시다고 감탄하며 한 말인데, 듣고 기분이 좋진 않았다.

어쩌면 그때. 입에 담고 싶지조차 않은, 아니 머리에 떠올리기조차 혐오스러운,

그 값싼 감상(感傷), '서러움'이 스쳤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난 그 '서러움'의 비린내 나는 편린을 멀리 쫓아내고 싶고, 여지를 줄 생각이 없다.

내가 참아줄 수 있는 최대치는 기껏해야 '씁쓸함' 정도?까지다.


서러움은, 기댈 곳이 있는, 혹은 과거에 누군가를 의지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일종의 여유고,

나는 그런 사치스러운 감상을 느끼며 살 만큼 한가로웠던 적이 없다.


그래서 내겐..


시름겨운 시간은 있어도, 서러웠던 순간은 없다.


그리고..앞으도로 내가 살아있는 한,

그따위 '여유작작한' 감상이 내 안에 파고드는 걸 허락하지 않을 만큼의 기운이 내게 남아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