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go-Oviedo-Bilbao-Paris
그렇게 열심히 걸어왔는데, 우리는 이곳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하루만 머물고 다음날 바로 이곳을 떠난다. 아침 8시 전부터 1층 로비에 내려와서 프랑스 노부부를 배웅한다. 서로 말도 안 통하지만 껴안고 등을 토닥거리면서 앞으로 다시 볼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을 잘 알기에 서로 잘 먹고 잘 살라는(더 멋있는 말이었겠지만 내가 불어를 못 알아들으니까) 말을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서 교환한다. 피스테라로 더 걸을 예정인 우고도 잘 가라고 보내고, 새벽 4시에 들어와서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피에르도 늦게나마 깨워서 아침도 챙겨 먹이고 역시나 잘 가라고 피스테라로 출발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못 올지 모르니 산티아고 대성당 앞 오브라도이로 광장으로 한 번 더 갔다. 라우라, 프랑스언니, 애비를 또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라는 인사를 하고, 점심을 먹는 동안에는 약간의 불화설?도 있었지만 여전히 사이좋은 호주 커플 패트릭과 아나톨리아도 먼발치에서 보면서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둘의 결혼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와서 모두들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축하!
그리고 광장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먹고 있는데, 먹을거리가 있으면 항상 빠지지 않는 마이크가 또 불쑥 우리 앞에 나타난다. 역시! 참 신기하다.
광장에서 점점 멀어져서 버스터미널 가는 길에 A가 갑자기 말을 꺼낸다. 이곳에서 그동안 같이 걸었던 거의 모든 사람들과 이별 인사를 하고 떠나는데 우리보다 한참을 먼저 앞서 가버린 조단만 못 만났다고 아쉽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명 이곳에 도착한 날 만났던 안드레만 아직 다시 못 만나고 떠난다며 말끝을 흐린다. 그 순간, 우리가 걷고 있는 길과 옆의 큰 도로가 교차되는 곳에서 안드레가 거짓말처럼 짠~ 나타난다. 우울랄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들이 헤어졌다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위에서 우연이 아닌 필연 같은 우연으로 다시 만나는 장면처럼, 우리는 안드레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또 놀라운 일은 안드레 역시 피터 아저씨와 같이 걸어오면서 우리를 못 만나고 떠나게 되어서 우리에게 잘 가라는 휴대폰 문자를 보내면서 걷고 있었다고 한다. 안드레야말로 더 놀라운 표정으로, 조금 후에는 눈에 약간의 습기가 많아진 듯 서로 ‘&*$^&#%’한 반응을 보인다.
안드레와 피터가 여기에서 보는 마지막 얼굴이겠거니 했는데 버스 정류장 바로 앞 길에서는 노르웨이에서 온 헬라가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버스정류장 안에서는 이제 우리도 복귀모드로 바꾸고 차분히 버스만 기다리고 있는데 독일 아저씨 유르겐이 맨발로 정류장 안을 걸어 다니면서 마지막까지 우리를 놀라게 해 준다. ㅎㅎ
Increible Camino de Santiago다.
Camino de Santiago!! 끝!!!
까미노길 부작용
아, 그래서 우리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까미노 북쪽길의 몇 개 도시를 거쳐서 파리로 돌아가기로 정했다. 로마인들이 2천 년 전에 세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루고(Lugo), 영화감독 우디앨런이 좋아했다고 하는 도시 오비에도(Oviedo), 그리고 거대한 거미, 튤립, 강아지로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빌바오(Bilbao)를 거쳐서 파리로...
한 달 전에 생장에 가기 위해서 바욘에서 탄 버스를 마지막으로 한 달 넘게 걷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버스에 올라타니, 내 발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데 저절로 수십 킬로미터가 이동이 된다는 것이 매우 어색하고 신기한 경험으로 느껴진다. 조선시대 사람이 현대에 와서 처음으로 버스를 타는 기분일 것 같다.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은행 잔고가 매일 팍팍 늘어나는 기분이다. 루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는 숙소가 멀지 않아서 숙소까지 가볍게 걸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계속 걸어 다닌다. 다음 도시 오비에도에서는 밤늦게 도착해서 숙소까지 한 20분 거리를 밤거리를 헤매면서 걸었다. 다음 날에는 대성당 주변을 걷다가 저 멀리 산꼭대기에 리오 데 자네이로의 거대 예수상 포즈의 예수상이 보이자 “저기 한번 가 볼까?”하고 걷기 시작해서 무려 산꼭대기까지 왕복 네 시간을 걸었다. 빌바오에서도 숙소까지 25분 거리를 10kg 짐을 메고 걸어 다녔다. 다음날 구겐하임 미술관은 물론 근처 볼거리도 모두 걸어 다닌다. 그런데 이렇게 걷는 것에 대해서 둘이 모두 전혀 의문을 갖지 않고 그냥 걸어 다닌다. 아직까지는 뭔가 탈거리를 탄다는 것이 어색하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 1986년에 개봉한 호주영화 ‘크로커다일 던디‘에서 호주 깡오지에서만 살던 주인공이 도시에 와서 호텔 침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바닥에 내려와서 잠을 자는데, 이제 그 기분을 십분 이해할 것 같다.
말레이시아로 돌아와서도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가는 길을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까미노길 구간’으로 명명하고 차도 옆 길을 땡볕을 맞으며 한 30분을 걸었다. 역시 끝까지 까미노길은 쉬운 길은 하나도 없다. 이런 열대지방에서 저런 커다란 배낭을 메고 차도를? 아마도 우리를 본 운전자들이 아주 많이 궁금 또는 의아해했을 것 같다.
아마도 아주 아주 오래전에는 차도 없고 마차도 없고 말도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서 타고 다니지 못할 때에는 우리는 늘 걸어 다니고 뛰어다녔을 텐데, 요즘은 여러 탈 것들 덕분에 행동반경이 너무 넓어져 버렸다. 그리고 넓어져 버린 대신에 얕게만 보고 다니는 경향이 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숲도 보고 나무도 보고 시간 되면 나무 위에 사는 새도 보고 나무 아래에 사는 개미도 보고 나무속에 사는 벌레도 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이제는 좀 천천히 다녀야겠다. 남들은 다 빨리빨리할 때 나는 천천히 다니면 좀 차별화가 되지 않을까?
그다지 골프에 대해서 지식이 많지 못한 우리가 대화를 하다가 A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골프장에 가서 본전을 뽑으려면 같은 요금 내고 더 많이 치면 좋은 거 아닌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인생도 본전을 뽑으려면... 천천히 사는 게 좋은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