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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ya Mar 31. 2022

취미는 모릅니다

나의 삶 속에 취미는 뗄 수 없는 관계인지라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다양한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해왔다.

나에게 누군가 취미를 묻는다면 멈칫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준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난 취미가 없다고 한다거나, 삶에 즐거움을 찾기가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좀 더 열정적이게 살고 싶어 하고, 틈틈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걸 넘어서 취미에 집착을 갖고 매달리게 된 건 그녀의 영향이 크다.
엄마의 취미와 여가생활은 오직 골프였다. 그 외의 시간은 철저히 가정주부로 살아가셨다. 신체적으로 약해지는 시기가 오니 그 유일했던 취미가 없어져 버렸고 삶에 의욕을 잃어가는 게 보였다. 새로운 취미를 발견하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기엔 여유가 없는 하루살이의  날들이었기에 그녀는 취미 없이 살아갔다.

꽤 오랜 시간을 능동적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삶이 아닌 살아지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도 언젠가 올지 모르는 몸이 쇄약 해진 나에게 다양한 취미가 마중 나가야 내가 지루하지 않고 좀 더 제대로 사람 사는 기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갑작스레 발레 티켓이 생겼고 함께 갈 사람을 선뜻 찾지 못해, 엄마에게 의향을 물으니 좋다고 하셨다. 시간도 길고 지루할 수 있고 허리가 아플 수도 있으니, 인터미션 시간에 나와도 된다고 당부에 당부를 하고 극은 시작되었다. 사실 예술의 전당으로 가면서 이미 마음속에는 1부만 봐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참을성 많은 엄마의 안색을 살피려 흘깃흘깃 보는데, 눈이 그 어떤 드라마를 볼 때보다도 빛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 멋있다고 몇 번이나 감탄하고 소녀처럼 즐거워하던 모습이 낯설었다. 다음엔 더 재미있는 호두까기인형을 보여주겠다약속했지만 몇 달 뒤 그녀는 떠났기에 나 역시 다시는 발레를 보지 않았다.


그녀와의 마지막 나들이가 되어버린 비 오던 수요일,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집에서 그녀와 커피를 마시다 즉흥적으로 성북동으로 갔다. 나는 엄마와는 미술관을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미술에 관심도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미술전시에 취미를 가질 일이 없는 그저 엄마일 뿐이었다. 성북동에 팥죽을 먹으러 가자고 꼬여내고선 이수동 작가의 미술전시에 잠깐 들려 보았다. 행복하고 따스한 그림들을 천천히 둘러보다 뒤를 보니 엄마가 없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서 낯설고 긴장된다고 말했던 그녀였는데, 꼼꼼히 그림 속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자작나무의 나이테를 하나씩 섬세하게 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듯한 엄마의 오묘한 표정과 반짝이는 눈빛과 대조되는 힘없는 다리는 참으로 이질적으로 보였다.  

엄마는 아직은 쌀쌀한 4월의 비 오는 마지막 날에 김이 나는 달달한 팥죽보다도 그림이 더 따뜻했다고 했다. 그림'꽃 피워놓고 기다리다'를 보며 아마 자신의 찬란했던 젊은 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 속에 내가 있었기를, 그녀의 행복에 내가 함께 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를 뿐, 엄마는 그림도 발레도 그리고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무수한 것들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었다. 다만 무엇을 자신이 좋아하는지  모를 뿐이었던 것이다.

온 맘 다해 순수하게 행복을 주는 그녀를 잃은, 무수한 취미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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