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회사에 입사한 지 3주 차가 되었다. 수십 번의 서류 탈락을 겪었지만,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과 군에서 쌓았던 경력이 어느 정도 일치하여 대기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취업 활동을 하면서 사람마다 연이 있는 회사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운 좋게도 대기업과 연이 이어져서 다행이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 장난감을 사줄 때 앞뒤 재면서 고뇌하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일이 많은 만큼 보상도 확실히 해주는 느낌이라 고생한 만큼 소득이 늘어날 것 같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데, 열심히 고생해서 노후 준비를 착실하게 해야겠다.
아직 회사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회사에 와서 놀란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하루 3끼가 모두 공짜라는 점이다. 게다가 매우 맛있어서 출근하면 식사 시간만 기다리는 것 같다. 군대 역시 영외급식비를 주긴 하지만, 훈련이나 당직이 많으면 받는 것보다 더 많이 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부분은 사회가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는 팀 분위기가 수평적이라는 점이다. 제일 걱정했던 것이 팀원과의 입사 서열과 나이 서열의 불일치에서 비롯되는 불편한 분위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였는데, 상호 존중이 기본으로 깔려 있는 수평적인 분위기라서 놀랐다. 물론 팀장과 같은 직책을 맡은 분들과의 관계는 수직적이지만, 군대보다는 확실히 부드럽다. 팀마다 분위기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팀의 분위기는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놀란 것은 급여이다. 고용노동법에 따라 초과근무수당은 통상시급의 1.5배, 휴일근무수당의 경우 8시간 초과분은 통상 시급의 2배 지급 등 군대보다 더 나은 보상을 해준다. 24시간 당직 근무, 휴일 출근 등을 하고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점은 정말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장교 생활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된다고 느낀 부분이 있는데, 회사 업무가 돌아가는 프로세스가 군대와 유사한 점이 몇 가지 있는 것 같다. 군에서 공문을 처리하며 어떤 업무를 할 때 규정과 절차에 따라 근거를 남기며 일하던 프로세스가 이곳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SOP라는 표준 운영 절차를 통해 모든 업무가 절차화되어 이루어져서, 굉장히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군대보다 발전된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에 업무 하기에 보다 편리하고 수월하다고 느껴졌다.
팀장과 같은 상급자에게 보고할 때도 대대장님께 혼나며 익혔던, 필요한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하는 능력 역시 도움이 됐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오해가 생기지 않으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장교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이외에도 지나가는 회사 직원과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하는 습관이나 주기적인 업무를 계획을 세워 처리하는 습관 등은 군대에선 당연하게 해 왔던 것이기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인 것 같다.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생도 생활 4년, 군 생활 5년 총 9년이 시간 낭비였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육사 출신이 아니었더라도 이 회사의 서류를 통과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보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 같다.
물론 육사 출신은 군대에 있을 때 가장 메리트 있고, 장기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자원이지만, 군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정말 힘들고 절망적이라고 느낀다면 사회의 문을 두드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몇몇 동문들이 안 좋은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일부는 생도시절 교류도 했었던 후배였기에 더욱 안타까웠는데, 혹시라도 군 생활에 지친 동문이 있다면 다른 선택지도 여럿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비단 육사 출신이 아니더라도 군에서 장교 또는 부사관과 같은 간부로서 쌓은 경력과 역량은 분명히 사회 어딘가에선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을 많은 간부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아직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작정 사회가 좋다고 말할 근거는 없지만, 어떤 일이든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고 불합리한 일을 겪더라도 군에서의 경험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버티다 보면 분명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서 직무 역량을 키워서 회사에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고 싶다.